이제는 기암절벽의 진수를 맛보러 가는 길.
단양의 눈부신 하늘을 이불 삼아, 옛날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붉은 암벽 꼭대기에는 모진 풍파를 겪어낸 노송들이 생명의 신비로움을 제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인암을 가리켜 추사 김정희는 하늘에서 내려온 한 폭의 그림 같다고 하고,
김홍도의 <사인암도>. 호암미술관 소장.
옛날 옛날 고려시대 대학자였던 역동 우탁(禹倬)이 정4품 벼슬인 사인(舍人) 재직 시 이곳에 머무르며 풍류를 즐겼다 하여,
깎아지른 듯한 바위 사이로 청련암의 삼성각이 보인다.
삼성각으로 오르는 좁고 가파른 계단 입구에는 비석이 하나 서 있는데, 우탁의 유명한 詩 '탄로가'가 새겨져 있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캬캬~! 우탁의 풍자와 해학이, 몇 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고스란히 마음에 와 닿으니, 감탄사가 절로 나는구나!
수많은 이름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바위 옆으로 '일주경천 백천회란(一柱擎天 百川廻瀾)'이란 글귀가 보인다.
도낏자루 썩을 때까지 신선놀음 한번 해볼까나. ^^
어제라는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바위 위로, 오늘이라는 파릇파릇한 새 생명이 자라난다. 역사는 어디에나 살아 있다.
사인암을 구석구석 돌아보며 나오는 길이었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또 다른 무릉도원이 나를 부르나니, 어쩜 이리 타이밍도 잘 맞을꼬! 충주호의 물안개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비가 온다!
천연의 비경을 간직한 덕에 예로부터 제2의 해금강이라 불리는 단양이 충중호의 푸른 물결과 만나,
비로소 그 절경에 마침표를 찍는다.
신선의 눈물 같은 빗방울은 방울방울 맺혀 물안개로 피어오르고, 가슴까지 안개가 자욱해진다.
그러나 이윽고 가슴속 안개를 헤치며 들려오는 하늘과 강과 산의 환상적인 삼중주에, 눈이 열리고 귀가 트인다.
어떤 상처도 포근히 안아 줄 것 같은 물안개에 마음을 기대며, 기꺼이 신선의 뱃놀이에 동참한다.
장회나루. 단양팔경 중 하나인 구담봉과 옥순봉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그 옛날 이 강을 건너다녔을 나룻배는 유람선으로 대체됐다.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에 오르는 순간, 마침내 장대한 공연의 서막이 열린다.
어쩌면 지금 내리고 있는 빗물은 신선의 눈물이 아닌 실향민의 눈물인지도 모르겠다.
강선대(降仙臺). 이곳은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재임 중에 두향이라는 기생과 정을 나눈 곳으로 유명하다.
이황이 풍기군수로 떠나가자 두향은 강선대 아래에 초막을 짓고 평생 그를 그리워하다가 이곳에 묻혔다 한다.
충주호의 잔잔한 물길을 따라가노라면 퇴계 이황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주인은 이제 와서 다른 곳에 숨었으니 학과 잔나비 울고 구름만 한가하네
누가 달 여울에 가로 앉아 시선을 부를 것이며 늦게 취하여 신공의 묘함을 알 수 있으랴
단양팔경 중 제3경인 구담봉.
거북이 한 마리가 절벽을 기어오르는 듯한 형상인 데다가, 물속에 잠긴 바위에 거북 무늬가 새겨져 있어 구담(龜潭)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단양팔경 중 제4경인 옥순봉. 크고 작은 바위들이 대나무 순 모양으로 힘차게 솟아오른 듯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선이 다스리는 빛 좋은 고을'이란 이름이 딱 들어맞는 곳이었다.
태극기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 땅의 모든 이들이,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단양의 강산이, 아쉬워하는 나를 배웅하며 다정하게 속삭인다.
'언제든 다시 와! 떠난다는 건 돌아온다는 약속이기도 하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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