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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총총] 편지

기린에게

 

그리움이 말이야,

회색빛 하늘에서 빗물처럼 떨어져 내릴 때

너희를 처음 만났어.

 

쇠붙이로 된 너희 몸을 타고 주르륵 흘러들어간

그리움이 말이야,

뻥 뚫린 마음의 구멍 사이로 차곡차곡 쌓였지.

 

특정한 무언가가 그리웠던 건 아니야.

그리움이란  말이야,

그냥 허전한 거야.

 

허전함으로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허전함으로 누군가와 만날 약속을 하고

허전함으로 잔뜩 인생에 취하는 거지.

 

 

 

 

그렇다고 말이야,

너희는 잘 모르겠지만

그게 꼭 슬프거나 불행한 건 아니야.

 

누구나 가슴에 소중한 것 하나씩은 품고 있는데

자꾸만 잊어버려서

그걸 다시 찾으려고 하는 거거든.

 

그래서 때가 되면 쌓여 있던 허전함비가 되어 내려

잊고 있던 소중한 무언가를 생각나게 해주는 거야.

그게 그리움이야.

 

 

 

 

우산을 받쳐주고 싶었어.

고층 건물로 둘러싸인 도심의 옥상 위에서

고스란히 비를 맞고 있는 너희 모습이 너무 짠했거든.

 

고맙고 미안해서,

얼른 너희에게로 달려가

달달한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지.

 

아직도 거기에서

그 모습 그대로 있을 너희가

오늘 따라 그립네.

 

 

 

 

세상에서 제일로 그리운 게 뭔지 알아.

잃어버리기 전까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묵묵히, 곁을 지켜주던 것들이야.

 

그러니 푸른 초원 위가 아니라고 해서

너무 서러워하지는 마.

너희를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있는 한 말이지.

 

그리워하는 대상도 없고

그리움의 대상도 되지 못하는 사람들보다

기린아인 너희가 훨씬 행복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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