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 없는 공지(空地)에 밤이 나리다
수없이 퍼붓는 거미줄같이
자욱-한 어둠에 숨이 잦으다
내 무슨 오지 않는 행복을 기다리기에
스산한 밤바람에 입술을 적시고
어느 곳 지향없는 지각(地角)을 향하여
한옛날 정열의 창량(蹌踉)한 자취를 그리는 거냐
끝없는 어둠 저으기 마음 서글퍼
긴-하품을 씹는다
아― 내 하나의 신뢰할 현실도 없이
무수한 연령(年齡)을 낙엽같이 띄워보내며
무성한 추회(追悔)에 그림자마저 갈가리 찢겨
이 밤 한 줄기 조락한 패잔병 되어
주린 이리인 양 비인 공지(空地)에 호올로 서서
어느 먼― 도시의 상현(上弦)에 창망히 서린
부오(腐汚)한 달빛에 눈물지운다
- 김광균의 詩 <空地> 전문
몸도 덥고 마음도 덥다. 심신이 더우니,
한 줄기 조락한 패잔병 되어 자욱한 어둠에 숨이 잦는다.
아, 내 하나의 신뢰할 현실도 없이 그림자마저 갈가리 찢겨
날이 갈수록 누군가의 글에도 누군가의 삶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없게 되었고, 그저
끝없는 어둠에 마음 서글퍼 먼 도시의 부오한 달빛에 눈물 지운다.
너 나 할 것 없이 헛헛한 아집(我執) 때문에
무수한 연령을 낙엽같이 띄워보내며 한 옛날 정열의 창량한 자취를 그린다.
아, 내 무슨 오지 않는 행복을 기다리기에
덧없고 덧없는 이 밤에도 空地에 호올로 서서 스산한 밤바람에 입술을 적실까.
울분이 잦아들지 않는다. 벌써 잊었는가,
마음속 텅 빈 땅에는 오지 않는 행복을 심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곁에 와 있는 초라한 진실을 심어야 한다는 것을.
어지럽다. 수없이 퍼붓는 거미줄같이 삶이 어지럽다.
어떤 상황에서든 놓지 않고 꼭 붙들고 있어야 할 무엇 무엇,
나에게는 그리고 당신에게는 아직 살아남아 있는가.
쳇! 내 하나의 신뢰할 현실도 없이. 내 무슨 오지 않는 행복을 기다리기에.
#추신 : 굵은 글씨만 이어서 읽으면 그것이 제일로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읽고 난,
잠 못 이루는 밤의 내 시시한 감상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