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길] 我

내 무슨 오지 않는 행복을 기다리기에

  등불 없는 공지(空地)에 밤이 나리다
  수없이 퍼붓는 거미줄같이
  자욱-한 어둠에 숨이 잦으다

 

  내 무슨 오지 않는 행복을 기다리기에
  스산한 밤바람에 입술을 적시고
  어느 곳 지향없는 지각(地角)을 향하여
  한옛날 정열의 창량(蹌踉)한 자취를 그리는 거냐
  끝없는 어둠 저으기 마음 서글퍼
  긴-하품을 씹는다

 

  아 내 하나의 신뢰할 현실도 없이
  무수한 연령(年齡)을 낙엽같이 띄워보내며
  무성한 추회(追悔)에 그림자마저 갈가리 찢겨

 

  이 밤 한 줄기 조락한 패잔병 되어
  주린 이리인 양 비인 공지(空地)에 호올로 서서
  어느 먼 도시의 상현(上弦)에 창망히 서린
  부오(腐汚)한 달빛에 눈물지운다

 

  - 김광균의 <空地> 전문

 

 

 

 

몸도 덥고 마음도 덥다. 심신이 더우니,

한 줄기 조락한 패잔병 되어 자욱한 어둠에 숨이 잦는다.

 

아, 내 하나의 신뢰할 현실도 없이 그림자마저 갈가리 찢겨

날이 갈수록 누군가의 글에도 누군가의 삶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없게 되었고, 그저 

끝없는 어둠에 마음 서글퍼 먼 도시의 부오한 달빛에 눈물 지운다.

 

너 나 할 것 없이 헛헛한 아집(我執) 때문에

무수한 연령을 낙엽같이 띄워보내며 한 옛날 정열의 창량한 자취를 그린다.

 

아, 내 무슨 오지 않는 행복을 기다리기에 

덧없고 덧없는 이 밤에도 空地에 호올로 서서 스산한 밤바람에 입술을 적실까.

 

울분이 잦아들지 않는다. 벌써 잊었는가,

마음속 텅 빈 땅에는 오지 않는 행복을 심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곁에 와 있는 초라한 진실을 심어야 한다는 것을.

 

어지럽다. 수없이 퍼붓는 거미줄같이 삶이 어지럽다.

어떤 상황에서든 놓지 않고 꼭 붙들고 있어야 할 무엇 무엇,

나에게는 그리고 당신에게는 아직 살아남아 있는가.

 

쳇! 내 하나의 신뢰할 현실도 없이. 내 무슨 오지 않는 행복을 기다리기에.

 

 

 

#추신 : 굵은 글씨만 이어서 읽으면 그것이 제일로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읽고 난,

            잠 못 이루는 밤의 내 시시한 감상문이다.

 

 

'[마음길] 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랑새를 찾았다  (4) 2013.10.22
마음 노을  (16) 2013.06.10
원칙과 의지  (2) 2013.05.15
종이접기 1/2  (2) 2013.05.04
일장춘몽(一場春夢)  (7) 2013.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