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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일기] 책 이야기

중년의 로맨스 '춤추는 별'

 

    2012년 11월 11일 초판 1쇄본

 

 

오랜만에 말랑말랑한 중년의 로맨스 소설 작업을 했다.

처음 원고를 받았을 때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져 구성에 조금 변화를 주고, 곧바로 교정과 윤문에 들어갔다.

중간중간 저자의 전화를 받았는데, 정겨운 대구 사투리로 조심스럽게 원고에 대한 의논을 해오셔서 인상에 남았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자연히 저자가 어떤 태도와 심성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 일에 대한 애정도가 달라진다.

다소 프로답지 못한 처신일지는 모르나, 어쩌겠는가? 나도 사람인 것을! ^^

 

 

  "중년의 나이가 되면 대부분 한 번쯤 일탈을 꿈꾼다.

   가슴이 텅 빈 것처럼 공허한 느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중년은, 소설이나 영화 같은 연애를 실제로 하고 싶다는 충동에 빠져들기 쉽다.

   사랑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다.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배를 뜨게 하는 것도 물이요 배를 전복시키는 것도 물이듯이, 중년의 사랑 역시 달콤하고 행복하면서도 고통스럽고 불행한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중년의 사랑은 하나를 얻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건다. 그것은 절벽 끝에 피어 있는 꽃을 꺾는 것과 같다.

   또한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산들바람처럼 왔다가 쓰나미처럼 휩쓸고 지나간다.

   여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가치관과 인품에 달려 있다.

   결혼 후의 일탈이 불륜으로 이어져 가정이 깨진 사람은 무모한 바보이며, 결혼 후 한 번도 일탈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너무 순진하거나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

 

 

저자의 머리말 중 일부이다.

처음에는 그저 중년의 달달한 사랑 이야긴 줄로만 알았는데,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사랑에 대한 저자의 철학적 접근과 방대한 양의 자료 조사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자의 노고와 정성이 원고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자, 그럼 잠시 본문 속으로 들어가 보자.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인간은 자신 속에 혼돈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 니체 -

 

  그녀도 천생 여자였다. 그동안 문자를 통해서 전해진 그녀의 느낌은 강인함과 연약함이 공존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막상 만나고 나니 후자 쪽에 더 가까웠다. 누군가의 보호가 절실히 필요한 연약한 한 마리 새 같다고나 할까. 그녀는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얻게 된 지금의 행복이 언제 깨질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었다.

  어떤 연인이든 수십 년이 지나도 늘 처음 같은 설렘 속에서 사랑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랑의 행위는 의지로 가능하지만 감정은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이란 모든 것을 녹슬게 하고 빛바래게 한다.

  사람이 사랑에 빠질 때는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어 흥분상태가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도파민의 분비가 서서히 줄어들면서 처음의 그 뜨겁던 사랑 대신 점점 편안하고 익숙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열정의 자리에 익숙함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만남이 지속될 것 같던 사람과도 언젠가는 헤어지며, 언제까지나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 같던 사람도 언젠가는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안나가 고개를 돌려 내 눈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이 영원히 기억에 남게 되길 간절히 바라는 눈빛이었다.

 

  미국의 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말했다.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가슴속에 어떤 생각이나 사상을 계속 넣어두고 살다 보면, 어느새 그렇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대체로 미래는 운명적인 것보다 자신이 오랫동안 꿈꾸고 생각한 대로 펼쳐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안나와의 사랑에 대해 방향을 잡게 된 것도 에머슨의 영향이 컸다.

  나는 순수한 사랑을 하고 싶었다. 그저 단순히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는 사랑, 그 사람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랑,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순수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사랑은 그 사랑의 단점까지도 운명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 내가 필요해서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필요로 하는 이타적인 사랑!  

 

  “과거의 틀에 맞추어 현재를 재단하려고 하지 마세요. 원하든 원치 않든,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어요. 우리 좀 더 솔직해져요. 남녀의 사랑은 성욕이라는 본능을 바탕으로 두고 있어요. 아닌가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그것이 인간의 본능은 맞지만, 본능을 조절하는 것 또한 사랑일 수 있어요.”

  “연애는 서로의 애정뿐만 아니라 상대와 살을 섞는 중대한 일도 요구해요.”

  “물론 인정은 하죠. 하지만 완전한 하나가 되는 순간이 갈라지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국기에 초승달을 그려놓은 나라는 많아도 보름달을 그려놓은 나라는 하나도 없어요. 열정은 충족되는 순간 식을 수밖에 없어요. 안나 씨는 우리의 사랑이 식는 걸 원치 않겠죠?”

  “식을 때 식더라도 한번 뜨겁게 태워봤으면 좋겠어요. 이방 씨는 평생을 열정적인 사랑에만 빠져 살길 바라나요? 우리의 사랑이 계속 뜨거울 수는 없잖아요. 섹스 후에 열정적인 사랑의 감정이 식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우리 사이를 더욱 끈끈하게 해줄 수도 있잖아요.”

  “나도 남자인데 왜 그런 마음이 없겠어요? 그러나 브레이크가 없는 차가 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에요.”  

 

  나는 퇴근길에 꽃 한 다발을 사서 집으로 갔다. 아내는 남편이 들어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히 부엌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힘없는 모습으로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자, 또 왈칵 눈물이 났다. 나는 한 손에 꽃을 들고 한참을 눈물만 흘리고 서 있었다.

  안나가 떠난 지 한 달쯤 지나서 그녀의 길고 긴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처음에는 그녀인 줄 모르고 무덤덤하게 휴대폰을 집어 들었었다. 그런데 안나에게서 온 문자메시지였다. 제목에 쓴 ‘시코쿠 순례길’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보는 순간 가슴이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아직도 나는 안나를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곧 마음을 진정시키며 안나의 메시지를 읽어나갔다.

  "이방 씨! 그대의 마음이 곧 저의 마음이니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지는 않겠어요. 저는 내일 시코쿠 순례길을 떠납니다. 전에 이방 씨에게 시코쿠 순례길을 꼭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말한 것 기억하시죠? 학창시절부터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던 일을 이번에 하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불혹의 나이지만 왜 그리 마음 하나 잡는 것이 힘든지 모르겠네요. 이번 순례길에 가지고 가는 화두는 '방하착과 북극성'이에요. 방하착(放下着)이란 불가의 묘법 중 하나로 정신과 육체를 유린하는 일체의 집착을 다 버리는 일, 또는 집착을 일으키는 여러 인연을 놓아버리는 일을 말합니다. 그동안 제가 들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오겠습니다."

 

 

작년 초가을에 이 책 작업을 했었다. 그사이 1년 남짓의 시간이 또 인생 저편으로 날아갔다.

아, 날아간 것이 아니라 축적된 것인가? 치, 축적은 무시기! 날아간 것이 맞다. (ㅡ,.ㅡ)    

올 가을은 대여섯 개의 책을 동시에 맡는 바람에 가을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어제야 겨우 창 밖의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을 꺼내들고 다시 요리조리 살펴보니, 어느새 나까지 말랑해져 릴케의 사랑 문구가 떠오른다.

"누군가를 사랑하다는 것은 인생 과업 중에 가장 어려운 마지막 시험이며, 다른 모든 것은 그 준비 작업에 불과하다."

이야~ 가을이다!

 

 


춤추는 별

저자
김달국 지음
출판사
행복에너지 | 2012-11-1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인간은 자신 속에 혼돈을 간직하고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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