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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일기] 책 이야기

출판일기를 시작하며(上)

 

 

 

  나는 직업이 출판 프리랜서이다.

  쉽게 말하면 출판사 원고들을 받아 교정, 교열, 윤문하는 단순한 작업부터,

  원고라고도 할 수 없는 자료들만 갖고 원고의 새 틀을 짜거나 인터뷰를 하고 대필하는 다소 복잡한 작업까지를 아우르는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경제가 안 좋아질수록 가장 타격을 입는 업종이 출판 업종이다.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열악한 우리나라 출판 현실에서 사람들은 제일 먼저 책값부터 아낀다.

  그러니 겨우겨우 명맥은 유지해도 몇몇 메이저 출판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출판사가 적자를 면치 못한다.

  더욱이 1인 출판을 비롯한 영세한 규모의 출판사가 많다 보니 문을 닫는 출판사가 속출할 수밖에.


  그 불똥이 결국 나에게도 튀었다.  

  동안 참으로 배짱(?) 좋게도 소수의 지인들을 통해서만 출판 일을 의뢰받아 왔던 나로서는,

  지인이 출판사를 그만두거나 거래하던 출판사가 문을 닫으면 덩달아 졸지에 일거리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나날이 줄어들던 일거리는 결국 재작년을 기준으로 올 스톱 해버렸다.

  그나마 유일하게 남아 있던 친구가 대표로 있던 출판사 역시, 친구와 다투는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천하태평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벌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6남매의 막내였다. 때문에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은 아니었다.

  엄마아빠와 오빠가 벌어다준 돈이었다. 시집간 언니들도 막내를 위해 화장품부터 옷가지 등을 빠짐없이 사다 날라주었다.

  그러므로 사는 내내 그다지 부족할 것이 없었다.

  철딱서니 없게도 오직 스스로에 대한 내적 갈등과 타인에 대한 괴리감만이 내가 타파해 나가야 할 인생의 주 타깃이었다.


  그러다가 상황이 달라졌다.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말을 몇 년 전에야 비로소 실감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빠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큰 수술을 받아야 했으며 오빠는 잘 나가는 대기업을 때려치웠다.

  언니들의 사정도 짜기라도 한 듯 하나같이 안 좋게 바뀌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드디어 내가 무언가 해야 할 차례가 된 것이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나이는 이미 사십 줄이 넘어 있었고, 그렇게 오랫동안 출판 일을 해왔던 것에 비해 내세울 만한 경력이 전무했다.

  게다가 한 성깔 해서 폭넓은 인맥과도 거리가 멀었고,

  그에 반해 생활력은 빵점이어서 무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결국 버티고 버티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내기 시작했다.

  알다시피 출판 업계는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월급이 무척 짜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출판 일뿐이었으므로 당연히 그 짠 출판사들이 1차 목표였다.

  취업대란이라는 말뜻을 제대로 알 리 없었던 나는,

  오히려 '앞으로 취직하게 되면 답답한 월급쟁이 생활을 어찌 하지!' 라는 정말로 말도 안 되는 걱정부터 하고 있었다.

  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을 터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