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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 여행/체험

[꽃집 일기 2] 체험, 삶의 현장!

 

꽃집 출근 첫날! 조금씩 날이 밝아온다. 아~ 이것이 대체 얼마 만에 만나는 일출이냐, 감격하는 것도 잠시.

이 첫새벽에 웬 차들과 사람들이 이리 많은지, 놀라움으로 입이 딱 벌어지면서 어느새 한숨이 새어 나온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부지런히 살고 있건만, 그동안 나는 대체 어디에 있었던 것이냐... 하면서.
남들에게는 당연하기만 한 일상을 저 혼자 호들갑 떨며 대견해 하던 것이 민망해져, 출근하기 전부터 기가 팍 죽는다.

 


 
  [출근 첫날]

  꿈이냐 생시냐. 4시 반에 알람을 맞추고 5시에 일어났다. 이 시간까지 안 잔 적은 많아도 일어나 있던 적은 별로 없다.
  "나도 할 수 있다!"를 부르짖으며, 
어두운 새벽의 아파트 단지를 울 강쥐 응가 시키러 한 바퀴 돌고 난 후 출근 준비를 했다.
  온 집안 식구가  나보다 먼저 깨 동분서주한다. 
엄마는 새벽길에 차를 갖고 가는 것이 맘이 안 놓이나 보다. 
  기대 반, 무(無)기대 반으로 6시가 조금 넘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일출과 동시에 지상으로 부드럽게 퍼져 나가는 빛살의 향연에 눈뿐 아니라 마음까지 부셔 온다.  
  만감이 교차한다.
  좋았던 일, 아팠던 일, 의욕이 넘쳤던 일, 무기력했던 일, 가슴 부듯했던 일, 마음 저리게 슬펐던 일. 
  새벽 햇살이 파노라마처럼 지난 시간을 쭉 펼쳐 놓은 채 길 안내를 자청한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또, 어느 길로 가고 있는 것인가...

  살살 달리라는 엄마의 당부를 기억하며 출근 시간 15분 전에 도착했다. (나와 출판사를 같이 다녔던 이들은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ㅋㅋ)
  출근 첫날인 만큼 좀 일찍 도착해 우아하게 모닝 커피 한 잔 마시고 시작해야지, 했던 계획은 정녕 꿈이었다.
  꽃집은 이미 사람들과 차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던 것.
  손님들 사이로 바쁘게 오가는 주인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그 북새통 속을 차를 끌고 들어가 한켠에 주차를 하노라니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내 뒤통수에 꽂히는 듯하다. 에고, 민망하여라.
  커피는 고사하고 숨 돌릴 틈도 없이 첫 대면하는 주인아저씨께 인사만 드리고 곧바로 삶의 현장에 뛰어들었다.

  모든 처음에는 낯섦에서 오는 어색함이 있는 법.
  그 생경함이 당혹스러워 얼굴까지 빨개진 나는, 도대체 뭘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몰라 그저 주인아주머니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이쪽저쪽에서 손님들이 바쁜 주인아주머니 대신 "언니!" 하고 나를 보며 소리친다.
  이 꽃은 뭐예요? 가격은요? 꽃은 얼마 동안 펴요? 월동은 돼요? 열 개만 담아 줘요! 20개짜리 한 판 줘요! 비닐봉지에 담아요! 

  짐을 많이 실어야 하니 박스 포장 해야 돼요! 차 있는 데까지 날라 줘요! 내 차 그거 아니에요! 건너편까지 뛰어요! 어서어서!

 
  세상에나 네상에나, 대답은 커녕 나는 누군가 부르기만 하면 재까닥 "사장님~!" 하고 주인아주머니만 외치고 있었다.
  그래도 첫날은 여유가 있었던 편이다. 까짓거 아님 말고! 라는 나름대로의 배짱도 있었으니.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순전히, 아무것도 모르니까 용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인 내외분도 손님들도 초짜 티가 너무 나는 나를 대놓고 나무랄 수가 없어 그저 너그럽게 봐줬던 것이다. 
  '처음'이라는 어드밴티지를 적용시켜서 말이다.
  한 차례 폭풍이 몰아치듯 들이닥쳤던 손님들이 썰물 빠지듯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도 쩔쩔매고 있는 내 모습이 불쌍했던지 주인아주머니께서,
  "괜찮아. 가격은 모른다고 해. 언니는 소매랑 도매를 구분 못하니까, 구지 알 필요 없어. 꽃 이름이야 뭐 하루 이틀 지나면 자연히 알게 될 거고." 하신다.   
  아, 그 뒤로도 퇴근 시간까지 여러 차례 이런 식의 반복이었다. 이상하게도 손님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꼭 한꺼번에 밀려든다.
 
  첫날의 내 주 임무는 아주머니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손님들이 산 물품을 포장하는 일이었다.
  포장이라고 해봤자 꽃이나 화분을 비닐봉지나 종이 박스에 담는 것이 다지만,

  그렇다고 해도 꽃이나 나무다 보니 꽃봉오리가 떨어지거나 가지가 꺾여서는 안 된다.

  그러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아침 손님들은 대부분 물건을 도매로 떼서 소매로 파는 소매상들. 
  그러니 빨리빨리가 입에 붙어 있다. 자신들의 가게며 노점에 풀어 놔야 하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하는 일을 빨리빨리 하려다 보니 맘만 급해 속도는 느려지고...
  거북이 같은 내 모습을 보다 못한 주인아주머니와 손님들이 직접 담으면서 하는 말.
  "언니야, 언니야는 커피나 타온나!"
  그나마 커피를 타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앗, 그런데 종이컵에 믹스 커피를 타고 나니 스푼이 없다.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컵을 흔들어 녹이려다 뜨거운 물이 손 위로 넘치는 바람에 그만 홀라당 바닥으로 쏟고 말았다. 

  주인아주머니는 데지 않았냐며 달려오시고, 손님들은 한쪽에서 끌끌 혀를 차고... 내 참 뻘쭘해서리. ㅠㅠ

 
  아침 내내 생경함을 느낄 겨를조차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차까지 나르다 보니, 제일 먼저 발바닥에서 신호가 왔다.
  하긴 그동안 손가락 하나 꼼작하지 않던 육체였으니 과부하도 이런 과부하가 없을 터.
  점심 시간이 되기도 전에 다리는 풀려 후둘거리고 입에선 단내가 풀풀 나고,
  뭣보다 발바닥에서 불이 나 애꿎은 신발만 벗었다 신었다 하기를 여러 번.
  겨우겨우 잠시 한산해진 틈을 타 꽃집 한켠의 간이 사무실에서 점심상을 앞에 두고 앉았다.
  여기서는 먹어야만 살아남는다며 무조건 한 그릇을 다 비우라 하시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나는 밥이고 뭐고 어지러워서 물만 조금 마시다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식사 중에도 손님이 오시면 주인아주머니는 벌떡 일어나 나가신다. 그러면서도 내게는 계속 식사를 하라 하시는데, 이런 좌불안석이 따로 없다.
  그분의 직업 정신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장사하시는 분들, 새삼 존경하옵나이다!!!)
 
  정신없이 휘몰아친 시간. 그 길고 길었던 꽃집에서의 첫날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마음도 몸도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진을 너무 뺐다. 긴장한 탓에 피로감도 배가 되었다.
  그러나 시간은 언제 어느 때든 배신하는 법이 없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야호!
  너무나 감사하게도 퇴근 시간 20분 전에 주인아주머니께서 등을 떠미신다. (울 사장님, 만세! ^^)
  "수고했어요. 얼른 가서 쉬어요. 안 하던 일 해서 며칠은 쑤시고 아플 거야. 따뜻한 물로 샤워부터 하고 푹 자요. 내 장담하건대 잠 하나는 잘 올 거야." 
  이리하여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추스르고 퇴근길에 올랐다.
  이때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집안 식구부터 출판사 지인들의 안부 전화가 빗발친다.
  "할 만한 거야? 몸은 괜찮아? 뭐뭐? 아니라고? 그럼 당장 때려치워! 그 나이에 몸까지 상하면 어쩌려고!"
  흑흑, 무정한 이들이여, 어제 좀 진작 강력하게 말려 줄 것이지, 이제 와서 이제 와서... 
  아이고 아이고, 팔 다리 어깨 어디 한 곳 안 쑤시는 곳이 없다. 긴장이 풀리며 피곤이 몰려와 집까지 무사히 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여기, 여기요! 혹시 대리 운전 해주실 분 어디 없을까요?
 
  꿈만 같다, 오늘 하루가.
  아, 정녕코 그림처럼 앉아 우아하게 꽃이나 파는 것이 아니었다, 꽃집의 아가씨는!
  꽃집에서 일하기로 하면서 내내 흥얼거렸던 노래. 꽃집의 아가씨는 예뻐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뭐시라? Oh, no! no! 꽃집의 늙은 아가씨는 힘들어요~ 그렇게 힘들 수가 없어요~♬
 -계속-
 
  * 추신: 이 글을 읽어 주신 여러분~!
            꽃 살 때는 한푼도 깎지 맙시다. 그분들 엄청 고생합니다. 
            바가지 쓰는 느낌이 들어도 부디 깎지 마시고,
            울 주인아주머니 말씀처럼 백화점에서 물건 살 때나 열심히 깎읍시다!!!

 

 

매 꽃집들이 늘어서 있는 꽃집 앞 도로 풍경.

건너편 집들은 주로 크기가 큰 관엽식물이나 나무를 파는 대품 가게들이다.

우리 가게는 초화를 비롯해 야생화,허브, 선인장 등등의 소품에서부터 대품까지 아우르는데, 와~ 규모도 젤루 크다.

때문에 몸도 더 고달프단 얘기. 아이고, 팔다리어깨야!

 

 

 

 

꽃집 전경. 입구에서부터 꽃과 화분들이 늘어서 있다.

새 물건이 들어오면 자리를 계속 바꿔 줘야 한다. 누가? 주로 알바인 내가! ㅠㅠ

 

 

 

설란(로도히폭시스, Rhodohypoxis baurii). 외떡잎식물 백합목 수선화과의 구근초.
앙증맞으면서도 정결한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가끔씩 나는 글도 꽃과 마찬가지로 정결한 것이 최고란 느낌이 든다. 
잡다한 수식어를 달지 않아도 그 의미가 전달되는 적확한 문체. 꽃에게서 또 한 수 배운다.

 

 

 

그 이름도 유명한 물망초(Myosotis alpestris). 지칫과의 여러해살이풀.
독일의 전설에 따르면, 옛날옛날 도나우 강의 가운데 섬에서 자라는 이 꽃을 애인에게 꺾어 주기 위해, 
한 청년이 섬까지 헤엄을 쳐서 갔다고 한다. 그런데 청년이 그 꽃을 꺾어 가지고 오다가 급류에 휘말리게 되자, 
가지고 있던 꽃을 애인에게 던져 주고는 '나를 잊지 말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녀는 사라진 애인을 생각하면서 일생 동안 그 꽃을 몸에 지니고 살았고 그래서 꽃말이, '나를 잊지 마세요!'가 되었다고 하니, 허허 그것 참!

 

 



아기별꽃. 어찌 이리 이름이 예쁠꼬. 학명을 찾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했는데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첫사랑이란 꽃도 마찬가지지만 꽃 이름 중 정확하게 학명을 알 수 없는 것들이 꽤 많다. 

처음에 누군가가 자신의 느낌대로 닉네임 같은 꽃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닐는지. 그렇다면 그 사람은 천재다!

 

 

 

첫사랑.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구매율이 높은 꽃이다. 꽃도 핀다고 하는데 아직 실물로는 보지 못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첫사랑이야 했는데, 가만가만 들여다보고 있자니 아련했던 설렘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아마도 첫사랑이 주는 그 두근거림을 꽃으로 은유해 이름을 붙인 듯싶다. 그건 그렇고 내 첫사랑은 지금 어디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