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한가한 점심시간에 꽃집 도로변의 벚나무를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있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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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은 봄이 시작되는 3월을 기점으로 4, 5월이 가장 바쁜 때이다.
특히 4월 중순부터는 부활절과 5월 초의 어버이날, 석가탄신일,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등등의 대목을 맞아 눈코 뜰 새가 없다.
쉼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비례하여 조금씩 일도 손에 잡히고 손님들도 낯이 익기 시작했으며,
제법 많이 팔리는 꽃과 나무에 한해서는 그 이름과 가격도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한 가지만 빼고. 여전히 일반인과 장사하는 이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
단골손님들은 하루나 이틀 터울로 다녀가므로 시간이 갈수록 익숙해지지만,
문제는 가끔씩 오는 손님과 일반인을 혼동하여 도매가를 불러야 할 때 소매가를 부른다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처음 본 손님을 상대할 때는 무엇보다, 소매가로 부를지 도매가로 부를지를 재빠르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어디 그런 재주가 내게 있겠는가. 결국은 어영부영하다가 주인아주머니만 힘차게 부를 수밖에.
1, 2주 때야 모르는 것이 그리 흠 잡힐 일도 아니었지만, 한 달이 돼 가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주인아주머니 보기에도 손님들 보기에도 민망한 일이었다.
처음 얼마간은 그 구분이 쉽지 않으므로 가격에는 관여치 말라던 주인아주머니도, 3주째 접어들자 슬슬 당신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신다.
아주머니의 노하우는 참으로 간단명료했다. "손님의 신발을 보라!"
신발에 흙이 묻어 있거나 낡고 지저분하면 90%는 장사하는 이들이라는 것. 와와~ 이리 명쾌할 수가!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무얼 그리 어렵게 구별하려고 애를 쓰는지? 그냥 물어보면 될 것을 말이다.
도매꽃집 경력 10년에 빛나는 주인아주머니께서도 정 구별이 안 되는 손님들에게는 "꽃집 하세요?"라고 대놓고 물어보신다.
그러면 열에 아홉은 "네!" 한다. 그 아홉 중 다섯은 거짓말이다.
나 같은 초보가 보기에도 영 아닌 것 같은 사람들까지 꽃장수인 척한 것이다. 왜냐? 딱 한 가지 목적 때문, 물건을 싸게 사기 위한.
처음에는 도무지 이런 상황이 이해가 안 가 묻고 또 물었다.
"아니, 그럼 저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 꽃값 좀 깎겠다고 얼굴색 하나 안 바꾸고 거짓말을 하고 있단 말예요?"
흥분해서 묻는 나를 혀를 차며 바라보며 주인아주머니가 대답한다.
"그렇다니까. 쯧쯧, 이리 세상 물정을 몰라 어찌하누!"
에고고, 내는 아직꺼정도 잘 모르것다. 거짓말하는 걸 이해할 수 없는 것과 세상 물정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건지.
꽃집에서 연탄난로는 요긴한 난방 수단이다. 품이 들기는 하지만 저렴하기 때문인데, 대략 5월까지는 연탄을 땐다.
이즈음 내가 아주머니께 가장 많이 듣던 말은 "언니, 이런 일 안해 봤구나." 였다.
시클라멘. 꽃말은 수줍음이라고 하는데 꽃이 피면 고개를 숙이는 성질이 있어 그런 꽃말이 붙었다고 한다.
베고니아. 예로부터 관엽식물로 애용된 꽃으로 다양한 개량 품종이 있다. 다른 꽃에 비해 손이 안 가고 가장 오래 가는 꽃이다.
진달랫과의 낙엽 활엽 관목인 철쭉. 꽃말은 사랑의 기쁨과 줄기찬 번영.
꽃집에서는 이태리 봉숭아로 불리던 꽃.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아프리카 봉선화(Garden impatiens)로 나와 있다.
하양, 연분홍, 진분홍, 주황, 빨강, 보카시(두 가지 색이 섞여 있다는 뜻. 유감스럽게도 꽃집 또한 일본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등등으로
색이 다양하고 물을 엄청 좋아하며 꽃도 계속해서 올라온다.
위의 것은 하와이 무궁화, 아랫것은 덴마크 무궁화. 얼핏 보아서는 구분이 잘 안 된다.
다만 가격으로는 구분할 수 있다. 훨씬 비싼 것이 덴마크 무궁화. 꽃이 피는 대형 화분 중 산수국과 함께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했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우리나라 무궁화가 제일이다.
일본이 원산지이며 꽃말은 교만, 허풍, 변심, 냉담, 처녀의 꿈 등이라 한다.
이 꽃을 지나칠 때마다 파란 향내를 맡을 수 있을까 싶어 코를 킁킁거리곤 했다. 아쉽게도 거의 향기가 나지 않았다.
햇살이 따가워지면서 잘 팔리는 품목이 하나 더 늘었다. 걸이용 화분들이다.
일명 사피니아. 화단 나팔꽃이라 불리는 피튜니아의 개량종이다. 가로등이나 다리에 관상용으로 많이 걸려 있다.
목마거리트. 연분홍과 진분홍이 섞여 있는 화분이 가장 잘 팔렸다. 잎 모양이 쑥갓 같다 하여 나무쑥갓이라고도 불린다.
밀레니엄 벨. 마치 사피니아의 미니어처 같다. 걸이용 화분 중에서는 가장 비쌌는데도 올망졸망한 꽃송이 때문인지 잘 팔렸다.
알콩달콩 깨소금 냄새를 폴폴 풍기는 신혼부부, 손자들 용돈이라도 줘야 한다면서 굳건히 5일장을 지키고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
꽃이 최고의 인테리어라는 프랑스풍 레스토랑의 사장님, 스리랑카에서 꽃집을 한다는 외국인 노동자, 성직자에 공무원, 대학교 교수님에 유치원 선생님,
플로리스트에 피아니스트까지.
봄이 무르익어 가는 오후, 한때는 그리도 꿈꾸던 꽃집 생활이건만 평화롭기 그지없는 바깥 세상을 바라보니...
손님을 맞이하는 입장에 서니 전에는 느끼지 못하던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어느새 떨어져 내린 벚꽃 잎이 시간의 융단 위로 살포시 쌓인다. 행여나 밟을세라 조심조심 벤치 귀퉁이로 가 봄에게 말을 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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