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까지 눅눅한 날이었다.
눅눅함을 없애는 데는 바람이 최고요, 바람을 느끼기에는 자전거가 최고요,
자전거 하면 출판계 선배님이자 친언니 같은 울 사는 님이 최고다.
배려심 깊은 사는 님의 계획대로, 약속장소인 상암동까지는 차로 가 주차를 한 후 바로 자전거로 바꿔 탔다.
오늘의 여행은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이용해 섬마을 둘러보기였다.
그 첫 번째 출발지인 디지털미디어시티 역이다. 기다리던 공항철도가 들어오고 있다.
매주 주말마다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되는 공항 철도를 이용하면, 자전거를 싣고 영종도(용유 임시역)까지 단번에 갈 수 있다.
오, 놀라워라. 세월이 이리 좋아져도 되는 것이더냐!
서울을 떠난 지 한 시간도 채 안 됐는데, 차창 밖 풍경을 구경하며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영종도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겠다. 자전거를 타고 산을 넘어야 하니 우선 배부터 든든히 채워야 할 터.
영종도의 유명한 맛집 중 하나인 칼국수 집으로 향했다. 늘 사람들로 북적거려서 한참을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곳인데,
오늘은 조금 이른 탓인지 곧바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날을 잘 잡았나 보다. 출발부터 순조롭다.
바지락에서부터 새우에 홍합에 북어에 우와, 가리비까지.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약간 짠 것이 흠이라면 흠.
후루룩 쩝쩝, 배가 부른데도 끝이 보일 때까지 먹다 보니, 빈 조개껍질만 한 상 가득이다.
식사 후 다시 한 번 자전거 루트를 확인한다.
공항철도로 영종도 도착.
식사 후 잠진도 선착장에서 무의도행 카페리 탑승.
큰무리 선착장에서 내려 오르막과 내리막 산길을 번갈아 지나 광명 선착장까지 행군.
광명 선착장에서 인도교로 연결된 소무의도에 입성.
마을의 골목길을 가로질러 먼바다가 보이는 소무의도 끝까지 go! go!
(휴~ 오늘 내로 갔다올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잠진도 선착장 가는 길. 자전거를 탄 덕분에 바닷바람을 만끽하며 순식간에 지나쳤다.
땡볕 속을 걷는 이들이 부러운 듯이 우리를 힐끔거린다. 무의도로 가려면 이곳을 거쳐서 배를 타야 한다.
자전거를 싣고 차와 사람들로 붐비는 선상에 서 있는 것도 색다른 재미였다.
예상 외로 배의 규모가 커서 놀랐다. 요금은 다소 비싼 편.
배에도 탔으니 이제는 새 구경을 할 차례. 아니나 다를까, 등장했다. 새우깡의 단골 손님, 갈매기!
어찌나 떼로 덤벼들던지 살짝 얄미웠다.
그래도 새는 새.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힘차게 날갯짓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유가 느껴졌다.
그 새파란 자유를 흠모하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앗, 덤으로 비행기까지! ^^
10분이나 지났을까, 벌써 도착이란다. 삑삑 갑판원들의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다. 큰무리 선착장이다.
무의도에 내려서는 순간부터 고행의 시작이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소무의도로 가려면 무의도를 관통하는 산길을 자전거로 지나야 하기 때문.
신발끈도 조이고 바람에 날리지 않게 모자도 푹 눌러 쓰고 라이딩 후에 마실 시원한 캔맥주도 샀으니, 준비 완료인 셈이다.
그런데 어째 순조롭다 했다. 그럼 그렇지, 덜렁대는 내가 사고를 안 칠 리 없다.
안경이 없어졌다. 선글라스로 갈아 끼면서 옷 위에 걸쳐 놓았던 안경이 깜쪽같이 사라진 것.
놀란 사는 님이 배에 떨어뜨렸을지도 모르니 분실물 신고라도 하고 오자고 해서 다시 큰무리 선착장까지 갔다왔다.
에고고, 일을 만든다 만들어. (ㅠ.ㅠ)
드디어 본격적인 자전거 여행이 시작되었다. 굽이굽이 산길이 보인다.
첫 번째 오르막길부터 기진맥진이다. 결국 중간에 내려서 끌고 간다.
그때 보란 듯 쌩하고 옆을 스쳐가는 자동차! 고생을 사서 한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ㅋㅋ
오르막과 내리막이 절묘하게도 섞여 있다. 지금의 오르막이 되돌아올 때는 내리막이 될 것이니, 참 공평도 하여라.
그런데 이상도 하지, 더는 못 가겠다 싶어 주저앉으려 할 때마다 저 모퉁이만 돌면 내리막길이 짠! 하고 나타날 것만 같아, 한 번씩 더 힘을 내게 되니.
어찌 잊을까,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올라온 길 끝에서야 비로소 맛볼 수 있는 내리막길의 환희를.
그 길을 환호성을 내지르며 자전거로 내달릴 때 내게로 착착 안겨 오던 그 짙푸른 바람의 숨결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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