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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 여행/체험

[꽃집 일기 5] 카네이션 전쟁

 

 

 

[출근 2개월 次]

 

드디어 1년 중 가장 바쁘다던 꽃집의 대목, 5월이 돌아왔다.
어버이 날, 석가탄신일,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놀랍다, 기념할 날이 이렇게나 많다니.
꽃집으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때가 없다. 그 기념일마다 상한가를 치고 있는 선물이 꽃이 아니더냐.
5월 초만 지나면 한가해질 거라는 주인 내외분의 말씀도 당장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도매 손님이 몰리는 이른 아침 시간에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뛰어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4월 말부터 카네이션을 확보하기 위해 도매 손님들이 들이닥치더니 5월이 되자 소매 손님까지 끊이지를 않아,
포장햐랴 계산하랴 배달하랴,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랄 판이다.
바야흐로 카네이션 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카네이션 장사가 꽃집의 한 해 매출을 좌우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니, 

꽃의 품질과 물량을 책임지고 있는 주인아저씨의 발걸음이 제일 분주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농장으로, 경매시장으로, 유통으로, 왔다갔다 하시며 식사조차 제때 못하신다.
품질도 품질이지만 물량을 잘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꽃은 생물이기 때문에 팔지 못하고 남으면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주인아주머니께서 꽃 장사야말로 앞으로는 남고 뒤로는 밑지는 장사라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이제야 그 말의 뜻을 알겠다.
그 때문에 도매 손님들 중에는 아예 카네이션 장사를 하지 않는 분들도 꽤 계신다.
꽃 욕심에 덜컥 많은 분량의 카네이션을 들여놓았다가 매년 다 팔지를 못해 손해를 보신 분들이 그러하다.
게다가 5월 한철을 노리고 너 나 할 것 없이 카네이션 장사에 뛰어들기 때문에 갈수록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어버이날에는 어린 학생들까지 삼삼오오 카네이션과 바구니를 구입해 길거리 곳곳에서 싼 값으로 판매를 하거나,
품질 낮은 꽃을 트럭으로 한 차 가득 덤핑으로 떼다가 싼 값으로 후려쳐서 파는 떴다방 꽃집까지 성행한다.
그러니 웬만한 꽃집으로서는 수지 타산이 안 맞을 수밖에.
물론 다년간에 걸친 경험과 감, 남다른 포장 기술에 바구니 등의 부자제를 저가 구입하는 노하우를 갖춘 꽃집들은 예외다.

 

도매 손님들을 상대하다 보면 한 가지 재밌는 것이 있다. 장사를 하시는 분들도 물건 욕심을 낸다는 사실.
예정에 없던 꽃이었는데도 이웃 꽃집에서 들여놓으면 그에 질세라 무조건 구입을 한다거나,
동네에서는 잘 팔리지 않는 꽃임을 알면서도 그날 기분에 따라 "오늘은 얘한테 팍 꽂히네!" 하며 즉흥적으로 구입하기도 한다.
소매 손님으로는 은행과 학부모들이 주 고객층을 이룬다.
은행에서는 VIP 고객들에게 나눠 줄 사은품으로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주문한다.
한번은 바깥 바람이 쐬고 싶어 자진해서 은평 뉴타운에 위치한 신용금고까지 배달을 가기도 했는데, 

마땅히 주차할 곳이 없어 단지를 다섯 바퀴나 돈 적도 있다. ^^

카네이션은 대부분 상자째 판매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일반 손님들을 상대할 때는 낱개로도 판매가 가능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격을 훨씬 높게 받을 수 있다는 것. 덕분에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옆집 화분 가게로 냅다 뛰어가 꽃과 어울릴 만한 화분을 골라 온다거나,

그 옆의 옆의 리본 가게로 달려가 감사 문구를 새긴 리본을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가져온다거나,

아예 처음부터 꽃바구니에 담아 포장(물론 포장은 주인아주머니 몫)까지 해서 완제품으로 판매하는 일까지.

정말 바쁘다 바뻐!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나마 이 메마른 세상에서도 아직도 꽃이, 어떻게 보면 가장 실용성 없는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선물 품목 중 1위라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한쪽으로 상자째 판매되는 꽃들이 줄지어 있다. 이른 아침에는 두세 단씩 쌓여 있어 뒤쪽이 안 보일 정도.

카네이션을 비롯해 장미, 국화, 칼랑코에, 칼란디바, 행운목, 바이올렛 등이 도매 손님들이 잘 사가는 품목이다.

 


 

 

 

위부터 칼랑코에, 장미, 행운목, 칼라. 이중 칼라(calla)의 몸값이 가장 비싸다.

두세 송이 핀 화분 하나가 도매가로 8천 원. 때문에 목이 좋거나 단골이 많은 꽃집에서 주로 구입한다.


여기서 잠깐, 어버이날에는 왜 하고많은 꽃 중에 카네이션을 선물할까?
미국 조그만 마을에 안나라는 말썽꾸러기 소녀가 살고 있었다.

어머니 속을 무던히도 썩이던 안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어머니가 생전에 좋아하던 꽃인 카네이션을 무덤 앞에 갖다놓았다고 한다.

이후부터 미국의 경우 어머니날(우리나라는 어버이날)을 기념하는 꽃으로 카네이션을 선물하게 되었는데,
어머니가 살아 계신 사람은 붉은 카네이션을,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무덤 앞에 놓아둔다고.
그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어버이날과 스승의날에 붉은색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드리며 감사의 뜻을 전하게 된 것이라는 것.

 


 

성년의날과 부부의날은 물론이고 어버이날과 스승의날에도 카네이션 대신 백합과 장미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아직 봉오리일 경우 꽃 색깔을 묻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쩔쩔 매는 내 곁에서 주인아주머니가 여유 있게 대답하신다.

"펴 봐야 알아요!"


 

나도풍란. 풍란은 알기 쉽게 소엽과 대엽으로 나뉘는데, 잎이 넓은 대엽 풍란에 속한 것이 나도풍란이다.

스승의 날에 단연 인기였다. 특히 꽃의 유무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이 났다. 풍란의 꽃은 참말로 청초하다.

 

 

 

한바탕 꽃의 전쟁을 치르고 난 5월 중순.

하굣길에 친구 손을 꼭 잡은 채 꽃집 앞을 지나치는 꼬마아이들이 평온 그 자체다.

막판에 쟁여 놓은 물량 때문에 카네이션 재고가 남긴 했지만 올 한 해도 그럭저럭 잘 넘겼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 주인아저씨와는 달리,

주인아주머니는 별 재미를 못 봤다며 한숨을 내쉬신다.
그러고 보니 두 분의 성격이 참 대조적이다.
아저씨는 말씀도 행동도 느릿느릿 여유로우신 반면 아주머니는 시원시원하고 성격도 급하시다.
두 분 다 바지런하시고 경우도 바르셔서 항상 손님들로 부쩍거리는 걸 테지만.

모처럼 한가롭던 오후였건만 고새를 못 참고 또 한 차례 소동이 벌어졌다.

상상도 못했던 꼬마 손님이 주인아저씨를 따라온 것이다. 태어난 지 열흘도 안 된 새끼 고양이였다.


 

 

 

 

 

유독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저씨가 잘 아는 농장에서 얻어온 것이라 했다.

어찌나 귀엽던지, 한편으론 어미와 떨어진 게 안쓰럽기도 했지만, 나는 그만 한눈에 반해 버렸다.

뜻밖에도 주인아주머니는 펄쩍 뛰셨다.

그렇지 않아도 바빠 죽겠는데 저 어린것을 어떻게 돌보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들기 전에 당장에 돌려주라고 성화시다.

정이 많아 새끼 고양이를 못 본체 할 수 없었던 아저씨도,

제대로 키우지 못할 바엔 좋은 주인 찾아주는 게 도리라는 아주머니도, 두 분 다 이해가 됐다.

(그런데 요 녀석, 이상하게도 주인아주머니에게만 찰싹 달라붙어 있다.)

이후부터 아주머니는 오시는 손님마다 데려가 키우지 않겠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한 나흘쯤 됐을까. 마침내 딸에게 선물하겠다고 가져가신다는 손님이 나타났다.

막상 고양이를 건네려 하니 나와 아저씨는 물론이고 아주머니까지도 서운해서 어쩔 줄을 모르신다.

눈가가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말은 괄괄하게 하셔도 누구보다 정이 많고 마음 여린 분이 아주머니셨다.

고양이와 눈물의 이별식을 치르고 한 이틀이나 지났을까?

헉, 또 다른 꼬마 손님의 등장이다. 역시 주인아저씨 작품. 손바닥만한 새끼 강아지였다.

 

 

 

 

 

이번만큼은 절대로 남에게 줘서는 안 된다고 엄포를 놓는 아저씨와,

강아지 치닥거리는 결국 내 차지 아니냐며 투덜거리면서도 그다지 싫은 내색은 하지 않는 아주머니.

이렇게 해서 우리 꽃집에도 새 식구가 하나 늘게 되었던 것이다. ㅎㅎㅎ

그 새새로 참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일도 많았던 5월이

카네이션과 함께 봄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계속-

 

천일홍. 꽃색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아 천일홍이라고 부른다.

꽃 이름 중에는 천일홍, 백일홍, 일일초처럼 시간과 상관있는 이름들이 제법 많다.

 


달맞이꽃. 해질 무렵에 피어서 해가 뜨면 다시 시든다고 한다. 어쩜, 이름을 이리도 잘 지었을꼬.

 


다육식물인 불로초. 선인장과의 일종이라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된다.

영지와 같은 효험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이름 덕분에 판매도 잘 됐다.

 


일일초. 꽃은 7~9월에 흰색과 붉은색 등으로 다양하게 피는데, 매일 한 송이씩 피어 일일초라고 한다.

 

 

틸란드시아. 꽃집에서는 그냥 틸란이라고 통용된다. 분홍색 꽃대에 보라색 꽃이 녹색 잎과 대조를 이뤄 눈에 확 띄는 꽃.

 

 

꽃기린. 꽃이 솟아오른 모양이 기린을 닮았다고 하여 꽃기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빨간 꽃도 있다. 관리하기 쉬운 꽃.

 


달리아(dahlia).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화려, 우아, 영화, 불안정, 감사 등등의 꽃말을 갖고 있다.

꽃색 또한 다양한데 특히 파스텔 톤이 도는 분홍빛과 주홍빛 꽃이 예뻤다.

 

 

흔히 달개비라 불리는 이 꽃의 정확한 이름은 닭의장풀.

어린잎과 줄기는 식용하고 꽃은 염색용으로 쓴다. 특히 잎은 열을 내리는 효과가 크고 이뇨 작용을 촉진한다고 한다.

 


옥살리스(oxalis). 일명 사랑초. 진보랏빛이 매혹적이다.

흐린 날과 밤에 꽃과 잎이 오그라들고 햇빛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볕이 잘 드는 곳에 심어야 한다.

 


족두리꽃. 예복 입을 때 부녀자들이 머리에 얹던 족두리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

멀리서 보면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드는 나비와 닮아서 풍접초(風草)라고도 부른다.

 


땅해바라기. 정말 이름처럼 땅딸막하다. 꺽다리 해바라기만 보다가 이 꽃을 보니 너무너무 귀여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