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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총총] 편지

얘들아, 올해도 수고 많았다!

 

 개나리, 목련, 벚꽃, 라일락, 철쭉, 민들레에게

 

그러니까 말이지, 너희들을 만난 게 언제냐 하면,

띵까띵까 서너 달은 족히 놀았을 겨울이란 놈이 마지막 심술을 부릴 때였어.

여린 봄 햇살이 맥을 못 출 때였지.

꽁꽁 언 마음이 채 녹지 않은 그때, 수줍게 고개 내민 너희들과 눈이 딱 마주친 거야.

얼마나 반갑고, 기쁘고, 마음이 놓이던지. 한편으론 너희들이 뚫고 지나왔을

세찬 바람과 모진 추위와 잔인한 허기를 생각하니, 얼마나 코끝이 찡하던지.

게다가 겨우내 배부르고 등 따습게 놀고먹었던 나 자신과 비교하자니, 얼마나 또 부끄럽던지.

기억나니? 너희 앞에서, 모처럼 곤하게 든 잠을 깨우는 건 아닌가 싶어 말 한마디 못 붙이고

조심조심 뒷걸음치던 사람 있잖아? 헤헤, 그게 바로 나란다.

 

 

 

그리고 말이지,

시간이 얼마나 위대한지는 너희들이 제일 잘 알잖아?

햇살이 깊어지고 하늘이 높아지기 시작한 어느 날이었어.

간밤에 누군가가 요술 방망이를 휘두른 게 분명해. 꾸벅꾸벅 졸고 있던 너희가 하룻밤 만에 화들짝 깨어났거든.

어찌나 신비롭고 황홀하던지, 눈이 부셔서 너희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었어.

그저 한켠에 서서, 활짝 열린 너희 집 대문으로 분주하게 드나드는 손님들 모습만 구경하고 있었지.

너희들의 귀빈 중의 귀빈인 나비랑 벌이, 경쟁이라도 하듯 아물아물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속에서 춤을 추고 있던데!

아마도 너희 집에서 밥을 잔뜩 먹고 나온 손님들 모두가, 대접 한번 잘 받았다고 방방곡곡 소문을 내줄 거야.

신나지 않아? 그렇게 되면 지점이 또 한 군데 느는 거라고!

 

 
그런데 말이지,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우린 그때 이미 느끼고 있었던 거야. 행복한 만남 뒤에 길고 긴 이별이 기다리고 있음을.
그렇지만 나는 하나도 슬프지 않아.
너희들이 얼마큼의 인내와 끈기로, 깜깜한 어제를 지나 밝은 오늘에 이르렀는지 잘 알고 있거든.
그러니까 저 밤눈처럼 떨어져 내리는 너희의 눈물은, 어제에 대한 회한이 아닌 또 다른 내일을 향한 축복인 셈이야.
제 온몸을 던져 희망을 지켜낸 자들만이 띄울 수 있는 위대한 승전보!
지난했던 여정을 마치고 대지 위에 몸을 눕힌 너희가, 파릇한 새싹이나 화려한 꽃송이 못지않게 아름다운 이유가 거기에 있어.
이제 다시 땅과 하나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너희지만, 언제나 그렇듯 내년을 기약하며 잊지 않고 있을게.
눈 시린 봄날에 너희가 보여 주었던 이 마법 같은 일들을. 아, 감동 또 감동이었어.

 

 

얘들아~~~ 올해도 정말 수고 많았다! ^^

부디부디 편히 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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