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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의 곳간] 리뷰

[책/소설] 농담 - 밀란 쿤데라

 

1993年1月25日 7판본 / 도서출판 벽호/ 밀란 쿤데라

 

이 비애는 내가 처한 상황에는 예외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의 돌연한 깨달음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잉여에서, 변덕에서, 세상의 모든 것(고상한 것이든 야비한 것이든)을 알아보고 체험해 보겠다는
들뜬 동경에서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였다는 것들이 사실은 알고 보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인생의 가장 기본적이고,

증후적이고 <통상적인> 상황에 불과하다는 사실의 깨달음이 또한 나에게 비애를 안겨다 주었다.

내가 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범위가 정확하게 정해져 있었다는 사실이,

내가 지금까지 살아와야 했던 사랑의 지평선이 정확하게 그려져 있었다는 사실이,

내가 처한 상황이 내 자유(아마도 일 년 전에 그려볼 수 있었던 바와 같은)의 표현이 아니라 내 한계성의 내 유한성의,

내 <선고>의 표현이었다는 사실의 깨달음이 또한 나에게 비애를 안겨다 주었다.

그리고 나는 공포를 느꼈다. 저 황량한 지평선으로부터의 공포였고, 저 쓸쓸한 운명으로부터의 공포였다.

나는 내 영혼이 점점 오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내 영혼이 완전히 포위되고 말았다는 사실에, 탈출할 길이 없다는 사실에 전율하였다.

그날 저녁부터 나의 내면은 모든 것이 변하였다.

그 속에서(마치 약탈당한 방처럼) 시름과 번민과 회한과 자책만이 어슬렁거리는 그러한 내면은 더이상 아니었다.

나의 내면의 방은 깨끗이 정돈되어 누군가가 살고 있었다.

내면의 벽에 걸려 있는 오랜 세월 동안 가기를 멈추었던 시계가 돌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변화였다.

이제까지 생의 길잡이도 되지 못하고 시간표 구실도 못하면서 무에서 무에로만 움직이던 시간이

(나는 끝없는 휴지 속에서 살아왔다!) 인간적인 얼굴을 다시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거리를 재고 수를 헤아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나는 외출에 매달리기 시작하였고, 하루하루는 루찌에를 향하여 오르는 사닥다리의 가로장이었다.

나는 내가 아무리 루찌에를 사랑하였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녀가 아무리 <특별하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 우리들이 함께 만나고 사랑을 하게 되었던 그 <상황>과는 뗄 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었다.

나는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들이 그 속에서 사랑하는 상대방을 처음 만나게 되고,

그 속에서 상대방이 살고 있는 그러한 환경에서 사랑하는 상대방을 분리해 놓으려는 것은 분명한 오류이며,

사랑하는 상대방으로부터 그 상대방 <자체>가 아닌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편집광적인 집착을 가지고 일소해 버리려 한다든지 그 속에서 함께 살아왔고,

또한 그들의 사랑의 모습이 담긴 그러한 <사랑의 이야기>를 일소해 버리려고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내가 여자를 통해 좋아하는 것은 그녀가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을 위해 무엇이냐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나에게 제공하는 것이 무엇이냐와 그녀가 <나를 위해> 무엇이냐는 것이다.

나는 그녀를 우리들 사랑의 연애이야기 속의 한 등장인물로서 사랑한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나의 생각이었고, 동시에 나의 다짐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될까봐서 거의 두려워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만약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루찌에가 이미 루찌에가 아닌 상황에서 서로 만나게 되리라는 사실과

끊어진 줄을 다시 이을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는 없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루찌에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든지, 그녀를 망각해 버렸다든지,

그녀의 이미지가 거의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그녀는 조용한 노스탤지어의 형태로 언제나 나의 내부에 머물러 있었고,

영원히 잃어버린 것을 동경하는 그러한 심정으로 나는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루찌에는 영원한 과거의 존재(과거에는 여전히 살아 있지만 현재에는 죽어버린 그 무엇)가 되었으며,

나의 마음속에서 차츰 그녀 자신의 육체성과 물질성과 구체성을 상실해 버리게 되었고,

양피지에 새겨진 전설과 신화가 되어 작은 금속 상자에 담긴 채로 내 인생의 근저에 놓여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최면을 걸어놓고 있는 이 과거와 연결시키기 위해 내가 이용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연결고리가 하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복수다.

그러나 이 복수 또한 불행하게도 내가 지난 사흘간 확인한 바대로 나의 뒤로 향한 달음박질이 공허한 것처럼

똑같이 공허하고 부질없음이 드러났다.

그렇다, 제마넥이 자연과학부의 그 강당에서 푸칙의 <형장에서 쓴 르포타지>를 낭독하고 있었던 때에,

바로 그때에 내가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얼굴에 강타를 날려야만 했다. 이후도 이전도 아닌 바로 그때여야 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복수는 일종의 허상으로, 사적인 종교로, 하나의 신화로 변해 버리고 마는데,

이 신화는 거기에 참여하였던 사람들로부터 날이 갈수록 점점 멀어져 가게 된다.

그리고 비록 복수의 신화 속에서는 그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더라도 실제에서는

(보도는 지속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오늘은 다른 얀이 다른 제마넥 앞에 서게 되고, 내가 여전히 되돌려주어야 할 그 빚진 강타는 이제 되살릴 수도 없고,

복구할 수도 없으며, 결정적으로 상실되고 말았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만일 내가 강타를 날린다 하더라도,

이 강타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게 될 것이고, 또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는 전혀 다르고, 낯설고,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의미들을 얻게 될 것이고, 나의 의도에도 없었던 다른 무엇이 될 것이고,

또 천방지축으로 날뛸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이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고사하고 이를 제어하는 일조차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오늘 하루에 대한 울적한 심사가 전신을 엄습하였다.

이는 단순히 오늘 하루가 헛되고 부질없어서가 아니라 부질없음 그 자체가 부질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는 이 테이블과 더불어, 나의 머리 주위를 윙윙거리며 날고 있는 저 파리와 더불어 망각되어 버릴 것이고,

이는 나의 테이블 위에 떨어진 보리수의 황금색 꽃가루와 더불어,

그 속에 우리들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일시적인 현상인 저 굼뜨고 형편없는 서비스와 더불어

망각되어 버릴 것이고, 심지어는 사회 자체도 망각되어 버릴 것이고,

이보다도 훨씬 이전에 이 사회의 실수도 과실도 부당행위도 모두 망각되어 버릴 것이다.

이 실수와 부당행위들에 의해 내가 얼마나 많은 고초와 괴로움을 당했으며,

나는 얼마나 부질없이 이들을 교정하고, 시정하고, 응징하려 하였던가.

그렇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왜냐하면 있었던 것은 있었던 것이고, 이는 절대로 되돌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 개의 거짓 믿음으로 자신을 속이고 있다.

하나는 <영원한 기억>(사람들, 사물들, 행위들, 민족들의)에 대한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교정>(행위들, 실수들, 죄들, 부당행위들의)에 대한 믿음이다. 이들은 둘 다 모두 거짓 믿음들이다.

실제에 있어서는 이와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망각될 것이고, 교정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교정의 과업은 (복수도 용서도) 망각을 의미한다.

어느 누구도 이미 있었던 부당행위를 교정하지 못할 것이고, 모든 부당행위는 망각될 뿐이다.


- 밀란 쿤데라의 <농담> 중에서.

 

 

오래 전

삐뚤삐뚤 줄치며 읽었던 쿤데라.

그 곁에 떨어진 사랑 하나,

자꾸만 겹쳐지네.

 


농담

저자
밀란 쿤데라 지음
출판사
민음사 | 1999-06-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펴냈던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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