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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의 곳간] 리뷰

[책/詩] 깃발, 어느 갈매기, 바위, 생명의 서, 너에게 - 유치환

 

1991年 11月 15日 초판본 / 미래사/ 유치환

[깃발] [어느 갈매기] [바위] [생명의 서 一章] [너에게]

 

 

` ` ` ` ` ` `

유치환의 詩에서는 강인함이 느껴진다. 삶에 대한 존재의 의지다.
재수를 결심하며 매일 아침 유치환의 <깃발>을 연습장에 쓰는 것으로부터

하루를 시작했다던 어떤 이를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시 한 편의 감동.

외로움이나 절망, 불행까지도 따스한 손길로 위로해 주는.
온전히 치유될 수는 없어도 그 따스함에 잠깐이라도 스며든다면,

짊어지고 있는 고통의 무게가 조금쯤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찬찬히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서도 삶에 위안이 되는 고마운 존재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글이 그렇고 음악이 그렇고 영화가 그렇고 자연이 그렇다.
하루라도 빨리 더 많은 이들이 이 사소하면서도 이 위대한 것들에게

더 자주 감동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깃 발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어느 갈매기                                                                     

 

猖狂不知所求(창광부지소구)

浮游不知所住(부유부지소주)

나의 세상은 모두가 서툴렀거늘
만사는 될 대로 되는 것이어늘

밤비 나리는 도회여
이 밤 호면(湖面) 같은 나의 포도(鋪道)에
아롱이는 등(燈)들도 저윽이 구슬퍼
나는 젖는 대로 비에 젖는
어느 한 마리 외로운 갈매기로다

원(願)하여 이룬 바 없고
회한은 오직 병 같아

내 무뢰한 같이 헐한 주점에 앉아
목을 메우는 한잔 호주(胡酒)에
오늘밤 어느 갈매기처럼 오인(嗚咽)하노니
오오 나의 골육이여 너는 어느 때
개인 너의 하늘을 깨달으려느뇨

 

바 위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憶年) 비정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생명의 서 一章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아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회한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너에                                                                                           


물같이 푸른 조석(朝夕)이
밀려가고 밀려오는 거리에서
너는 좋은 이웃과
푸른 하늘과 꽃을 더불어 살라

그 거리를 지키는 고독한 산정(山頂)을
나는 밤마다 호올로 걷고 있노니
운명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피할 수 있는 것을 피하지 않음이 운명이니라

 

 


생명의 서(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016)

저자
유치환 지음
출판사
미래사 | 2002-06-3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관점으로 노래한, 유치환의 자선 시선집.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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