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이고 삭였던 울화가 불뚝 치밀어 오를 때면, 삐꺼덕거리는 마음을 식히기 위해 집을 나선다.
내게는 어떤 말이나 사람보다 위안이 돼 주는 길이 있다. 대부도에서 어섬까지의 길이 그렇다.
오래 전 화성에서 사강을 거쳐 어섬으로 가던 길을, 이번에는 시화방조제를 지나 대부도에서 거슬러 올라가며 확인해 보았다.
가끔씩 길을 잘못 들어 헤매거나 아예 작정을 하고 모르는 길로 갈 때가 있는데,
처음 가보는 길이 이미 알고 있는 길과 어떻게든 연결돼 있음을 확인하게 되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그때마다 무릎을 탁 치며 '아하, 이 길이 또 요렇게 연결된 것이로구나!' 하고 감탄을 하게 된다. 어섬까지의 길도 그렇게 찾은 길이었다.
꽉 막혀 있던 가슴속으로 뻥 뚫린 길이 들어온다. 시화방조제다.
길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로 속삭여 준다.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
이 간단한 세 음절의 인사말에 벌써부터 콧날이 시큰해진다.
오이도에서 대부도 방향으로 시화방조제를 지나노라면 오른쪽 바다 너머로 송도 신도시가 보인다.
볼 때마다 도시가 더 자란 듯하다. 맨해튼이 따로 없다.
간이 포구에는 낚시꾼을 기다리는 배들로 북적거리고, 방파제에는 줄지어 선 낚시꾼들이 고기잡이에 여념이 없다.
바다를 가운데 두고 이국적인 느낌의 건물과 낡은 목선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섬이었던 대부도가 시화방조제로 연결돼 육지가 된 것처럼, 대부도에는 배가 아닌 차로 갈 수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이 많다.
섬과 섬 사이를 차로 오가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때로는 자연보다 사람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잘 닦인 길 위에 서 있을 때다.
하루에 두 번씩 바닷물이 빠지면서 드러나는 갯벌은 대부도의 또 다른 자랑이다.
새들의 천국에서 새들은 나를 구경하고 나는 새들을 구경하다가 어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혼자만 알고 싶어 꽁꽁 감춰 두었던 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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