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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 여행/체험

욕심이 유배되는 섬, 南海 3

 

 

 

  꿈도 없이 들었던 잠에서 깨어나니 남해의 따스한 햇살이 눈가를 간지럽힙니다.
  몸도 마음도 한껏 기지개를 켜고 지도를 들여다봅니다.
  남해로 들어올 때는 창선 삼천포 대교를 건너와 주로 지도의 오른편인 창선면과 삼동면 쪽을 지나왔고

  오늘은 서면과 남면, 남해읍과 설천면 쪽의 왼편을 둘러보고 남해 대교를 건너 서울로 향할 예정입니다.

 

  아침 햇살이 남해의 섬과 바다를 만나 쪽빛으로 부서져 내리고
  그 평온한 정경을 남면 해안도로를 달리는 내내 목격하게 됩니다.

  평온하게만 보이는 이 바다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썼을까 생각하니

  코끝이 또 찡해집니다.
  그들의 굳센 생명력 덕택에 지금의 푸른 남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남해는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고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입니다.
이 때문에 숨을 곳이 많아 외적의 침입도 빈번했다 하니 그만큼 남해 사람들의 삶도 고단했을 터이지요.
다른 지역보다 유난히 눈에 띄던 해안의 방풍림이, 그들의 삶의 바람까지 막아 주면 참 좋겠습니다.

 

 

차창 밖으로 그 유명한 다랭이 논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저를 남해로 불러들인 이유 중 하나였지요. 

 

 

  가천 다랭이 마을입니다.
  안내 책자에 다랭이(다랑어의 방언으로 좁고 작은 논배미) 논에 관한 재밌는 유래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옛날에 한 농부가 일을 하다 논을 세어 보니 한 배미(논을 세는 단위)가 모자랐다고 합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길래 그만 포기하고 집에 가려고 삿갈을 들었더니, 바로 그 밑에 논 한 배미가 있었다고 하네요.

  그만큼 논의 크기가 작았다는 얘기지요.

  지금은 삿갓배미부터 300평도 넘는 큰 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의 다랭이 논이 형성돼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 멀리, 다랭이 논과 밭 곳곳에서 일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남해는 한겨울에도 잘 자라는 시금치와 마늘 때문에 가장 늦게까지 녹색의 빛을 잃지 않는 땅이라고 합니다.
  기후가 온화한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허리 한 번 못 펴고 일하시는 저분들의 바지런함 덕분이겠지요.

 

 

 

 

  바다를 향하여 그림같이 뻗어 있는 다랭이 마을길입니다.

  가슴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길을 타박타박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세상에~ 거짓말처럼 바다 한가운데 소추섬이 떠 있습니다.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유.배.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유배는 유배이되 가히 황홀한 유배라 할 만했습니다.
  외딴섬으로 유배된 이들의 지난한 삶에 먼저 마음이 갔어야 하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라면 유배가 된들 어떠하리 라는 생각만 드니, 아직도 철이 들려면 멀었나 봅니다.

  그렇지만 제 안에도 섬이 있고, 당신 안에도 섬이 있고, 그와 그녀 사이에도 섬이 있고,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도 섬이 있으니,

  몸이 외따로 떨어져 있다 해도 마음이 떨어져 있는 것보다는 나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헤헤, 정현종 시인이 들으면 웃으실라나요.

  혼자서 실없이 웃으며 신나게 내려왔던 길을 다시 헉헉거리며 올라갑니다.

  이번 여행의 화두가 돼 준 남해 유배 문학관으로 가기 위해섭니다.



남해 유배 문학관 정경. 내부뿐만 아니라 야외에도 다양한 조형물이 아기자기하게 설치돼 있었습니다.


 

 

  건물 정면에 "절망 속에 핀 꽃, 유배문학의 산실!"이란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참말로 멋지지요, 절망 속에서 핀 꽃이라 함은.
  다름아닌 희망이겠지요, 어떤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나는.

  남해는 제주와 거제 등과 더불어 남쪽의 대표적인 유배지였다고 합니다.


  사람과 자연, 문학이 공존하는 공간을 모토로 건립된 남해 유배 문학관은

  남해 유배객의 애끓는 마음을 담아 유배의 역사와 문학에 관한 교육의 장으로도 삼고 있다고 하니

  문학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저로서는 매우 뜻깊은 장소였습니다.


 

이곳에도 햇살을 벗삼아 세월을 낚는 강태공이 있습니다.

살금살금 다가가 대체 무얼 낚고 계신지 망태기 안을 들여다보니, 놀랍습니다. 진짜 물고기도 한 마리 들어 있지 뭡니까.

남해의 관광지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세심함이 곳곳에 숨어 있어 보는 이의 마음까지 흐뭇하게 해 줍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껏 자태를 뽐내는 풍경과 솟대. 또 살금살금 다가가 등을 기대고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등을 통해 전해지는 나무의 숨결과 찰랑찰랑 울리는 풍경 소리에 더 바랄 것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으매 삶은 또 살 만한 것이 될 테지요.


 

유배객들이 기거했던 초가집을 재현해 놓은 곳.
처마 밑에서 잠시 쉬었다 가려 하니 마루 위에 천역덕스럽게 내려앉은 햇살 한 자락과
울타리로 쳐놓은 탱자 나무 가시에 자꾸 마음이 따끔거립니다.

  남해의 대표 유배객이자 효심이 지극했던 서포 김만중 선생님께서도
  이런 초가집에서 지내시며 사친시(思親詩)를 지으셨다고 합니다.
  젊은 나이에 혼자 되신 어머님께 바친 사모곡이었지요. 그 심정이 어떠하셨을지 가만가만 헤아려 봅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주위를 둘러보면 한결같음으로 곁을 지키는 것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하늘과 땅과 구름과 바람과 산과 바다...
  자연이야말로 고개만 돌리면 늘 거기에 있는 것인데도 뭣이 그리 바쁜지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사람이 문제인 게지요.

  제일 중요한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 자연과 더불어 언제까지나 제 손을 놓지 않는 사람들, 가족!

  모쪼록 앞으로는 이 좋은 것들을 더 열심히 더 꼬옥 껴안고 살아야겠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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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랭이마을 / 마을

주소
경남 남해군 남면 홍현리 912번지
전화
055-860-3946
설명
자연과 조화를 이룬 최고의 예술품, 명승지로 지정된 다랭이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