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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 여행/체험

욕심이 유배되는 섬, 南海 2

 

해오름 예술촌 입구의 조형물들.

과 발 모양의 벤치가 재밌습니다. 길게 드리운 그림자 덕분에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더 멋드러집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계단마다 씌어진 문구에 먼저 눈이 갑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오르시는 걸음마다 편안하고 행복한 걸음 되소서." 소소한 곳까지 마음씀이 느껴져 마냥 흐뭇해집니다.


 

저 조그만 걸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선생님의 풍금소리에 맞춰 열심히 노래를 따라 부르던 어린 시절의 제가 보입니다.

구석의 석탄 난로에 수북이 쌓여 있던 양은 도시락도요. 창문 틈으로 살포시 내려앉은 햇살처럼 눈부신 시절이었음을.


 

 

추억의 편지를 한 통 부치고 밖으로 나오니,

조망대 담벼락에 새겨진 글귀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와~ 명언이십니다그려.

자세를 낮추고 조그맣게 나 있는 구멍 안을 들여다보니,

그곳에서도 새가 울고 바람이 불고 물결이 넘실거리고.

 

 

해오름촌 동네 어귀에서 아담한 대나무 숲과 만났습니다.
충신이 죽으면 대나무가 난다 했지요.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가 바람에 찰랑이는 소리를 가슴 가득 담고

다시 길로 나섭니다.

 

 

남해의 길과 바다는 공존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몸소 보여 줍니다.
이름까지 어여쁜 물미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마치 바닷길을 건너는 듯합니다.
고개만 돌리면 거기에, 늘, 바다가 있습니다.
굽이굽이 그 길을 건너가 해안선과 백사장이 가히 절경인 은모래 해변에 잠시 닻을 내립니다.

 

금산과 송림에 둘러싸여 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은모래 해수욕장.

백사장 길이가 2km, 폭이 120m로 남해안 최대 해수욕장이라 합니다.

 

은빛 모래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반짝반짝 빛을 냅니다.
저 고운 모래밭을 맨발로 뛰어다니며 까르륵거리는 시간들도 있었지요.
그 시간들이 어느새 또 길이 되어 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떤 시간이든 더 꾹꾹 눌러 밟고 지나올 걸 그랬습니다.

 

바다와 섬이 사이 좋게 삶을 나누고 있는 남해에서의 하루는 짧기만 합니다.

한숨을 돌리기 위해 숙소로 향합니다.

축구와 야구 프로 팀의 겨울철 전지 훈련장이기도 한 남해 스포츠 파크.

산의 품에 폭 안겨 바다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해 가는 길의 풍광까지 팁으로 얹어 주는 데다,

오붓하게 즐기기에 더없이 좋을 것 같은 시설들이 잘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짐을 풀고 테라스로 나가 보니, 아~ 산과 바다와 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두 팔을 벌리고 반겨 줍니다.

이곳이 제주나 설악이었다면 대체 이것이 얼마짜리 방인교. ^^


길게 숨을 고르고 점점 사위어 가는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리 먼 길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저 혼자만 한참을 돌아온 것 같아 억울했던 마음이

조금씩 남해의 어둠 속에 녹아듭니다.


꼬불꼬불한 길이어도 한 발짝 떼어 놓을 때마다 자신만의 길이 된다는 것을 왜 좀더 일찍 깨닫지 못했을까요.

자신에겐 관대하고 타인에겐 편협하면서 왜 내내 불평거리만 입에 달고 살았을까요.
하나를 더 가지려고 손을 내밀면 쥐고 있던 하나까지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걸 왜 미처 몰랐을까요.


집을 떠나서 보내는 남해에서의 하룻밤이 과연 그 답을 알려 줄는지요.

마음 중에서도 가장 고약한 것이 욕심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동안 고단했던 몸과 마음이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듭니다.

 

다시 해가 뜨면, 어제보다 더도 말고 딱 한 뼘만 맑아져 있기를.

-계속-

 

 


큰지도보기

상주은모래해수욕장 / 해수욕장,해변

주소
경남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1136-1번지
전화
055-863-3573
설명
반월형 2km 백사장의 해수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