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에서 저녁약속이 있던 어느 날, 난생처음(!)으로 밤벚꽃 나들이를 갔습니다.
아파트 단지 벚꽃 구경만으로도 충분히 눈요기를 했던 터라 그다지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우와~ 여의도에 들어서기도 전에 삼삼오오 밤 나들이 나온 인파에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저녁 9시가 대낮처럼 밝은 데다 호박엿을 비롯해 여러 가지 먹거리를 팔고 있어,
북적북적한 것이 마치 남대문 시장 한복판에 떨어진 느낌입니다.
사람들 구경에 정신이 팔린 바람에 잠시 오늘의 주인공 벚꽃은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
여의서로의 벚꽃놀이 유래는 이러합니다.
여의도 신시가지를 개발했던 1968년에 여의도에 제방을 쌓는 한강개발이 시행되었는데,
폭파한 밤섬의 흙·모래·돌을 사용했으며 연인원 40만 명 동원으로 착공 후 100일 만에 섬둑이 완공되었고,
그와 동시에 도로가에 왕벚나무 1천여 주를 식재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해마다 4월이 되면 벚꽃이 만개하여 사람들을 불러모으게 된 것입니다.
이때 여의도 섬둑을 따라 길이 7킬로미터 너비 30미터로 조성된 방죽길을,
둥글게 바퀴처럼 생겼다는 의미에서 윤중로라고 불렀다는군요.
그러나 1984년부터 일본식 표현인 윤중로라는 이름 대신 구간을 나누어
서울교와 마포대교를 축으로 하여 동쪽은 여의동로, 서쪽은 여의서로로 명칭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드디어 도심의 밤하늘 사이로 벚꽃이 그 위용을 드러냅니다.
"어서 와, 친구야. 올해도 기다리고 있었는걸.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날들을!"
어느 길 위에서의 해후가 이보다 더 반가울까요.
찰나에 사라져 갈 운명이란 걸 알면서도 표표히 세상을 소요하듯 나부끼던 벚꽃 잎이,
제 마음속으로도 사뿐히 내려앉습니다.
"고맙다, 친구야. 기다려 줘서 고맙고 약속을 지켜 줘서 고마워!"
벚꽃이 활짝 핀 지금이 바로 그들과 이별할 때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재회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다시 1년 동안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그날까지,
조금쯤은 더 맑은 사람이 되어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여의도의 밤벚꽃은 도심의 불빛과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완성된 느낌이 듭니다.
이번 나들이로 또 한 가지 배웠습니다. 작별의 아쉬움이 클수록 만남의 기대 또한 커진다는 것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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