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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길] 我

원칙과 의지

 

 

 

늦은 밤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신호등 아래 섰다.

잠시 갈등을 한다.

 

혼자라는 것, 차량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늦은 시간이라는 것.

이럴 땐 오히려 녹색 불이 켜지길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바보처럼 느껴진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다시 멈춰섰다.

왠지 치사한 기분이 들어서다.

 

누가 지켜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며 길을 건너려 하는 자신이.

신호가 바뀌는 그 짧은 순간에도 무언가 의식하고 있는 자신이.

 

아예 처음부터 생각 없이 성큼성큼 건너갔으면 좋았을 것을.

왜 매번 그 타이밍을 놓치는 건지 모르겠다.

 

문득 원칙과 의지의 부재(不在)란 생각이 든다.

먼저 원칙(原則)을 정했더라면 이런 갈등은 하지 않아도 됐을 터.


"어떤 상황이든 신호등은 반드시 지킨다."  혹은,
"상황에 따라 신호등을 무시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자신만의 '원칙'이 정해지면 그다음엔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할 터.

바로 '의지(意志)'다.

 

비단 거리의 횡단보도뿐 아니라

인생길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건널목에서 또한 마찬가지리니.


신호등이 바쁘게 깜박이기 전 안전하게 삶의 건널목을 건너려면
우선 빨간불 아래 멈춰서서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아는 현명함부터 배워야 하는 법.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얌체보다는 바보가 낫겠다.
융통성 없는 원칙을 따라 굳센 의지를 담고 길을 건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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