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 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 기형도의 詩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全文.
한때는 여름이었던 이 길 위로 가을이 지나가는가.
지나가는 것이 어디 가을뿐이랴.
기쁨도 지나가고 이별도 지나가고 그리움도 지나가고 기억도 지나가고, 그 길도 지나간다.
시인의 말마따나 눈을 감아도 보인다. 무책임한 탄식과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친 희망.
이럴 줄 알았다면 이럴 줄 알았다면
아무것도 지나가지 못하게
내 저 길 위에서 조금도 비켜서지 말것을.
젠장!
앞으로도 뒤로도 길을 잃고도 여전하구나.
잘난 척하며 내뱉는 탄식과 반쯤 먹다 버린 희망은.
- 어느 짧은 가을날 오후, 길맹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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