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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의 곳간] 리뷰

[책/詩] 길 - 황지우

 

 

 
삶이란
얼마간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 
 
돌아다녀 보면
조선팔도(朝鮮八道),
모든 명당은 초소다 
 
한려수도, 내항선(內航船)이 배때기로 긴 자국
지나가고 나니 길이었구나
거품 같은 길이여 
 
세상에, 할 고민 없어 괴로워하는 자들아
다 이리로 오라
가다보면 길이 거품이 되는 여기
내가 내린 닻, 내 덫이었구나.
 
- 황지우의 詩 <길> 전문

 

 

 

 


 

얼마간의 굴욕, 명당은 초소, 거품 같은 길, 닻이 곧 덫...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는 시인이 아니었는데도, 이 시를 종일 웅얼대고 다닐 때가 있었다.

오래 전 일이다. 그때는 '삶이란 얼마간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란 구절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이백 퍼센트 동의한다.

돌이켜 생각하니 내 지나온 길에는 명당은커녕 초소조차 없었다. 그러니 보초도 없을 수밖에.
그 길의 주인이 나였음에도 보초는 서지 않고 팽팽 놀고만 있었으니, 허구한 날 적군이 쳐들어올밖에.
할 고민 없어 괴로워만 하며 걸어온 길은 거품이 되고, 결국 내가 내린 닻이 내 발목을 잡는 덫이 되었으니.
쯧쯧,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을 터!  

 


 

 

 


게 눈 속의 연꽃(문학과지성시인선 97)

저자
황지우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1991-04-0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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