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가 지면 문을 열어놓고
장사를 하겠습니다
빵이라도 쪄서 팔고
그 돈으로 술이라도 사놓고
기다리는 사람 되어 길목을 쓸겠습니다
슬픔을 보이면 끝입니다
2
소슬한 바람이 종이 끝에 내려앉습니다
나도 귀퉁이 한 끝에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습니다
우박처럼 몰아치는 시간과
바람만이 성큼성큼 종이 위를 쓸고 지나면서
아, 하얗게 한낮을 건드립니다
오고 있는 것은 없고
지나가는 것도 없습니다
헌데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합니다
나는 죄짓지 아니하는데
허공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죄를 짓습니다
미처 오지 못한 것은 없고
가고 오지 않는 것도 없습니다.
- 이병률의 詩 <소식> 전문
오랜만에 시집을 한 권 들고 전철을 타서
한 자 한 자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읽었습니다.
아, 기다리는 사람 되어 길목을 쓸겠다니요.
멋졌습니다. 제 눈에는 슬픔을 보이는 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처럼 느껴졌습니다.
아, 그리고 성큼성큼 종이 위를 쓸고 지나면서 하얗게 한낮을 건드리는
'우박처럼 몰아치는 시간과 바람'에 밑줄을 쫙 그었습니다.
아, 저야말로 이 시의 귀퉁이 한끝에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습니다.
나지막이 맨 마지막 시구를 반복해서 중얼거리면서요.
미처 오지 못한 것은 없고 가고 오지 않는 것도 없습니다.
미처 오지 못한 것은 없고 가고 오지 않는 것도 없습니다.
미처 오지 못한 것은 없고 가고 오지 않는 것도 없습니다...
아, 참말로 멋진 소식이었습니다. 시인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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