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내가 어린아이였던 시절 이래로 그랬던 것보다 훨씬,
선택의 자유라는 것은 단지 환상이라는 사실이 더 명확해졌다.
인생은 우리가 한번도 해결하지 못했던,
쓰디쓰고 본의 아니게 우스꽝스러우며 반복적인 갈등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는 사실도.
다른 때라면 나는 이런 사실에 미소지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은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포기할 준비를 했다."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면 와서 데리고 갈 수 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면, 기다리면서도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다림은 파괴적으로 변한다.
사물들이 미끄러지게 놓아두면 의식이 동요하기 시작하고 공포와 불안을 깨운다.
우울이 닥쳐오고 자멸하게 된다."
"나는 그냥 여기 서 있을 뿐이야.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면서."
"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냉담해질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긴장할 수는 있겠지만 냉담해질 수는 없다. 삶의 본질은 온기다."
"고통은 내것이지만 완전히 나를 흡수하지 못한다. 나의 일부분은 관객으로 남아 있다."
"이제 우리는 이 정도로 서로 가까워졌다. 우리는 압축된 병렬 상태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본문 중에서.
아끼는 사람이 건네준 책을 읽는다는 건 색다른 재미를 준다.
책을 건넨 사람의 취향과 색깔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이 그 사람의 마음에 들었구나, 이런 부분은 영 그 사람이랑 안 맞는 것 같은데... 등등의 느낌이
책을 읽는 내내 오버랩된다. 이 책은 소설 자체가 주는 재미보다는 그런 점에서 더 흥미로웠다.
잿빛이 떠오르는 소설이다. 눈과 얼음의 이야기지만 새하얗지도 투명하지도 않다.
덜 알려졌기에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그린란드'의 신비감조차도 고단한 현실과 맞물려 잿빛으로 등장한다.
부정과 냉소로 시작한 작가의 시선이 소설 종반에 긍정과 따스함으로 선회하는 것까지도.
어떤 작가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스밀라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적어도 자신이 아는 한 한 명도 없다고까지
극찬을 했는데, 흐음~ 글쎄...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냉소로 살짝 둘러쳐 놓은 오만과 편견이 거슬리느냐 아니냐는
순전히 읽는 사람 마음일 터이니.
한동안 그린란드의 빙하들이 떠돌아다닐 것 같다. 책을 건넨 이의 마음을 태우고.
이 두껍고 무거운 책을 조심조심 아껴가며 야금야금 읽었다는 것.
그대여, 그것만은 알아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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