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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生

그래서 그러나 그리고

 

 ...건널 테냐 말 테냐!

 

 

야트막한 산길을 타박타박 걷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 하나.
그래서. 그러나. 그리고.

이 세 개의 접속 부사만으로도 삶이란 충분히 설명되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살아가는 동안은 언제 어디서나 수많은 事實들과 직면한다.
개인의 삶은-자신이 만든 것이든 타인이 만든 것이든 혹은 둘 다이든- 그 사실들과의 치열한 싸움이다.
눈을 멀리 돌릴 필요는 없다.
자신의 삶에 존재하는 사실들만 들여다봐도 충분하다.

언제나 하나의 사실이 삶의 前提가 된다. 그것에 이어 각각의 접속 부사가 뒤따른다.

나는 성공했다. 그래서 행복했다. 나는 실패했다. 그래서 불행했다.
나는 성공했다. 그러나 불행했다. 나는 실패했다. 그러나 행복했다.
나는 성공했다. 그리고... 나는 실패했다. 그리고...

사실은 바뀔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다. 그러므로 불변이다.
그러나 그 사실 뒤에 어떤 접속 부사를 쓰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질 수 있다. 놀랍지 않은가...
더 들여다보자.

'그래서'는 전제가 긍정이면 긍정으로, 전제가 부정이면 부정으로 따라간다.
'그러나'는 그 반대다. 전제가 긍정이면 부정으로, 전제가 부정이면 긍정으로 대응한다.
'그리고'는 그렇다. 눈치 챘겠지만 '그리고' 뒤에는 가늠할 수 없는 수많은 결과들이 대기하고 있다.
가장 다양한 <경우의 수>가 동반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주로 어떤 접속 부사를 써왔던 것일까?
그래서? 그러나? 그리고?
아무래도 '그러나'인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어떤 일에든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성격이니까.
기 죽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를 많이 썼다고 해서 불행했단 얘기는 아니니까.

'그러나'는 오히려 매력적이다.
특히 전제가 부정일 경우 더욱 그렇다. 부정을 긍정으로 바꿀 수 있는 話者의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삶을 바꿀 만한 힘이 뚝뚝 묻어 나온다. 실패했어도 행복할 수 있다면 것이야말로 또 다른 성공이 아니겠는가.

'그래서'는 좀 심심하다.
너무나 순종적이다. 전제를 바꿀 힘이 거기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성공해서 행복하고 실패해서 불행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재미가 없다.

하나, 많은 사람들이 이 '그래서'를 원한다. 옛날 얘기의 마지막처럼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단다!" 식의 해피 엔딩을 말이다.

잠시 멈춰 섰다. 천천히 앞을 바라보던 시선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지나온 걸음마다 수많은 '그래서'와 '그러나'와 '그리고'가 찍혀 있다.
그 길목에서 놓치고 있던 것은 또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래서'든 '그러나'든 상관없었던 게 아닐까. 그 둘은 이미 과거인 것이 아니냐.

정말 중요한 것은 '그리고'가 아니었을까.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하고 있는 가능성.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그것이 어느 쪽이든- 행복이든 불행이든- 써내려갈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것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눈감는 그날까지 지고 가야 할 의무. 남은 날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그리고'는 그런 게 아닐까.

흠... 삶에 더 많은 '그리고'를 만들어 내려면, 이쯤에서 발걸음을 서둘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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