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누군가와 만나지 않았다면.
만약에 지나간 시간이 다시 돌아온다면.
만약에 체념 대신 오기를 품었다면.
만약에 끝까지 참고 버텨냈다면.
만약에 일찌감치 미련을 던져버렸다면.
만약에 이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갔다면.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이상하게도 '만약에'는 가정법임에도 미래형보다는 후회와 미련을 동반하는 과거형에 더 잘 어울린다.
'만약에 ~라면'보다는 '만약에 ~였다면'이 훨씬 마음에 와닿지 않는가.
'만약에'가 제일 빛을 발할 때는 뭐니뭐니해도 사랑에 관해서다.
만약에 누군가와 만났다면 만약에 누군가와 헤어졌다면,
만약에 누군가와 결혼했다면 만약에 누군가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결과가 명확하게 사랑 아니면 이별이라는 두 가지로만 나뉘기 때문일까.
전제만 다를 뿐 사랑이든 이별이든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게 또 이 '만약에'다.
누군가와 만났다면, 그 누군가와 만나지 않았다면이란 '만약에'가
누군가와 헤어졌다면, 그 누군가와 헤어지지 않았다면이란 '만약에'가 등장한다.
여기, 이 길 위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타인처럼 낯설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된다.
"만약에, 그때, ~였다면..." 참말로 못났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할 때마다 이 부질없는 가정법인 '만약에 ~였다면'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으니 말이다.
주위를 둘러본다. 순전히 자신의 의지나 신념만으로 스스로 선택한 길 위에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어쩌다 보니 이 길 위에 있더라"가 대부분의 사람들의 답이 아닐까.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만약에'를 연발하는 것은.
갈림길이 되었던 과거의 한 시점을 생각하다 보면,
무언가 억울하기도 하고 무언가 후회스럽기도 하고 무언가 미련이 남기도 해서.
결과에 만족하지 못할수록 '만약에'에 집착하게 되고,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만약에'에 치여 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뭐 어떤가. 이런 가정쯤이야 애교로 봐줄 수 있지 않을까.
'만약에'를 입에 달고 살면서 사소한 일에도 줏대 없이 흔들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긴 해도 죄 짓는 일은 아니잖는가.
후회나 미련은 적이 아니라 사는 동안 늘 함께할 친구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지금과 다른 사랑을 만났다면, 지금과 다른 일을 했다면, 지금과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랬다면 정말로 후회와 미련을 피할 수 있었을까. 그건 아니었을 터이니.
때로는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것도 인생의 지혜일지 모른다.
자신이 있는 자리가 당장은 마음에 안 차더라도 자신을 끝까지 '부정'하지 않는 것.
이것만 열심히 지키며 살아도 그게 어딘가.
후회와 미련 못지않게 희망과 긍정이라는 친구 또한 우리 곁에 있음에,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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