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섰다.
톨게이트를 지나면서부터 심상치 않던 차가,
고속도로를 빠져나오자마자 거짓말처럼 서버렸다.
그것도 유난히 긴 지하차도 한가운데서.
시동은 걸려 있는데 기어는 먹히질 않고 지면의 경사도에 따라서 앞뒤로만 출렁거렸다.
세상에, 차는 달려야 차이건만 주인의 지시대로 움직이질 못하니
이미 차가 아니었다. 장난감이었다.
달려오는 차들의 엄청난 속도와 클랙슨 소리에 기가 질려 비상등을 켰지만,
언제 뒤차에 받힐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 다급한 상황에서도 놀라운 발견 하나.
도로 자체가 완전히 평평한 곳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서둘러서 핸드 브레이크를 걸어 차체를 고정시켜 놓고,
나보다 더 떨고 있는 강아지를 품에 안고 차에서 내렸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안 좋은 일은 떼로 온다고 했던가. 휴대폰 배터리는 떨어질락말락했고,
수중에 있는 돈이라곤 만 원짜리 달랑 한 장이었고,
집에서는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곳이었고, 지하차도 한가운데였으며, 총알택시들이 질주하는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이상했다. 차가 멈추기 전까진 오만가지 걱정에 겁을 집어먹고 있었는데,
막상 완전히 멈춰버리자 오히려 차분해졌다.
몇 차례 시동이 꺼져 견인차 신세를 져봤기 때문일까.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짱가처럼 짠 하고 나타나는 울 나라 자동차 보험회사 덕분일까.
그것도 아니면 지레 걱정하느라 진이 있는 대로 빠졌기 때문일까.
하여간 내게는 이런 일이 종종 있다. 위급한 상황에선 오히려 냉정해진다.
무섭게 달려드는 헤드라이트를 등뒤로 받으며 한켠에 붙어 아슬아슬 걸어가면서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다.
그 와중에도 어떻게 알았는지 부르지도 않은 사제(?) 견인차가 달려오고,
택시와 승용차들이 차례대로 멈춰서서는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다.
내참, 참말로 친절한 한국인들이다.
떨고 있는 강아지의 체온만이 전해지고 있었다.
터널 밖이 멀기도 멀다. 차를 타고 지나쳤을 때는 몰랐던 사실이다.
하긴 상상이나 했겠냐고, 이 야심한 시각에 지하차도를 강아지 안고 걸어가게 될 줄.
다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이럴 때는 누군가의 얼굴이든 떠올려야 하지 않는가.
씁쓸하다. 십 년을 넘게 타 툭하면 고장 나는 똥차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늦은 밤 사고가 났을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
젠장, 여태 뭘하며 산 건가.
아무리 혼자 짊어지고 혼자 내려놔야 할 삶의 봇짐이라 해도 이건 아니지 않는가.
피붙이 외에는 이리 전화할 데가 궁하다는 건 말이다.
물론 연락하려고만 들면 못할 것 없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하지만 어쩌랴, 선뜻 버튼이 눌러지지 않는 것을.
우~와, 저기 보험회사 견인차가 달려온다. 이리 반가울 수가.
마음 털고 집에나 가야겠다. 커다란 견인차 꽁지에 내 똥차 매달고 왔던 길 거슬러 되돌아가야겠다.
차는 고치면 되는 것이고, 견인료로 날아간 생때같은 돈은 다시 벌면 되는 것이고,
휴대폰에 저장된 무용지물 번호들도 언젠가는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멀쩡히 살아남지 않았는가.
인생이란 언제 어디서든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그 '단 한 사람'을 찾는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