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갑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교차로 한켠에 서서 마음 먹먹해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렇게 떠나간 사람들을 마음 시리게 그리워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게 다 언제적 얘긴가 싶습니다.
몇 안 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서도 환멸을 느끼던 때가 있었습니다.
살면서 뭐 새삼스런 환멸도 아니었지만,
그때는 이래저래 힘들었던 시절이라 더 큰 무게로 다가왔었지요.
결국은 오롯이 '혼자'일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사실이 말입니다.
어쩔 수 없다는 체념 반, 이럴 수밖에 없냐는 분노 반.
그 둘이 매일매일을 싸우면서, 그렇게 몇 년을 보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분노는 사그라들고 체념이 더 크게 자리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결국 저 자신조차 체념하고 산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말도 안 되는 '평화'라는 옷을 입혀서 말이지요.
그러다가 문득 국어사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맘 내키는 대로 아무데나 펼쳐서 말입니다.
'진심'이란 단어가 네 가지 한자어로 쓰이는 걸 알고 계셨나요?
眞心-참된 마음. 참마음
塵心-속세의 일에 더렵혀진 마음. 名利를 탐하는 마음
盡心-마음을 다 씀. 정성을 다 기울임.
嗔心-왈칵 성내는 마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진심은 세 번째 盡心입니다.
마음을 다한다는 것. 누구에게든 어떤 일에든 盡心을 건넨다는 것.
저는 아직도 그것의 힘을 믿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얼마만큼'이나 마음을 다했느냐. 세상에게든 사람에게든 말입니다.
제게는 이것이, 사는 내내 화두로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아, 넋두리가 길어졌습니다.
힘 내시라는 말을 이렇게밖에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랍고도 질긴 '인연' 앞에서 착하게 고개를 끄덕여 봅니다.
조금만 쓸쓸해 하십시오.
부끄러운 손 그대에게 겨우 내밀고 있는 저를 생각해서라도 말입니다.
그럼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