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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의 곳간] 리뷰

[책/소설] 고리오 영감 - 발자크

 

 

 

  문학나눔에서 메일로 보내오는 문장 배달 중 <고리오 영감>이 있었다.
  오래 전 학창시절 때 읽었던 소설이라 별다른 감흥 없이 훑어보던 중에 나는 탁 하고 무릎을 쳤다. 이리 명쾌할 수가!

  법학을 공부하러 파리에 온 가난한 청년에게 같은 하숙집에 사는 사람이 충고를 하는 대목이었다.
  청년은 출세를 위해 사교계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었다.

 "이 바닥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길을 뚫어나가는지 자넨 아는가?
  반짝반짝하는 천재로 뜨든가, 그걸 못하면 재주 좋게 타락의 길로 들어서는 거지.
  마치 대포의 포탄처럼 이 수많은 군중 속에 강력히 파고들어 가거나

  아니면 몹쓸 역병처럼 슬그머니 그 대열에 스며드는 것이지."
 
  100년도 훨씬 전(1835년)에 발표된 소설이건만 마치 지금 세상을 빗대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추천한 소설가 이혜경의 말마따나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은 크게 다를 바 없다.
  마지막 재산까지 사교계에 진출한 딸에게 남김없이 바친 고리오 영감의 헌신은,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기러기 가족으로 사는 것도 얼마든지 감수하는 이 땅의 부모와도 닮아 있다.

  소낙비가 내렸다 그쳤다 하는 봄날 오후.
  반짝반짝 빛나는 천재의 발뒤꿈치는 고사하고 슬그머니 대열에 합류하는 것조차 못하고 있는 자신을 들여다보자니
  허, 그것참 그것참...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과연 내가 빠져든 지옥 같은 함정은 무엇이었나 하고.
  오랜만에 빗소리 벗삼아 <고리오 영감>이나 정독하면서 그 해답을 찾아봐야겠다.

 

 


고리오 영감

저자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출판사
민음사 | 1999-02-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프랑스 대문호 발자크의 작품. 다양한 자본주의적 인물군의 관계망...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순식간에 자금을 모으는 것이 지금 자네 같은 처지에 있는 젊은이 5만 명이 다들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문제라네.
자네도 그 5만 명 중 하나인 거지. 자네가 기울여야 하는 노력과 치열한 싸움을 한번 생각해 보게나.
독 안에 든 거미들처럼 서로가 서로를 먹어치워야 하는 거지. 좋은 자리가 5만 개가 있는 건 아니니 말일세.
이 바닥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길을 뚫어나가는지 자넨 아는가?
반짝반짝하는 천재로 뜨든가, 그걸 못하면 재주 좋게 타락의 길로 들어서는 거지.
마치 대포의 포탄처럼 이 수많은 군중 속에 강력히 파고들어 가거나

아니면 몹쓸 역병처럼 슬그머니 그 대열에 스며드는 것이지.
정직이란 아무 소용도 없다네.
사람들은 천재의 위력 앞에서 굽신거리지만 사실은 그 능력을 증오하고, 그 천재를 어떻게든 비방하려 하지.
왜냐하면 천재는 남과 나누지 않고 자기 것을 가져가니까.
하지만 그가 끈질기게 버틴다면 사람들은 굽힐 수밖에 없다네.
한마디로 상대방을 진흙 속에 매장해 버릴 수 없을 때 비로소 무릎을 꿇고 존경하는 것이지.
타락은 제멋대로 날뛰고 재능은 희귀하다네.
그래서 부패야말로 사방에 넘쳐 나는 용렬함의 무기인 셈이지.
자네도 도처에서 그 무기의 뾰족한 끝을 느낄 걸세.
남편이 몽땅 합쳐서 연봉 6천 프랑을 버는데 제 몸치장에 1만 프랑 이상을 쓰는 여자들을 자넨 보게 될 걸세.
1천2백 프랑 버는 월급쟁이가 땅을 사는 것도 보게 될 걸세.
롱샹의 한길 복판으로 남 보란 듯이 달리는 상원의원 아들의 마차에 동승하기 위해 몸을 파는 여자들도 볼 수 있다네.
딸이 빚진 약속 어음을 갚아 주어야만 하는 가엾은 바보 고리오 영감을 자네도 보았지.
그 딸의 남편은 연 수입이 무려 5만 프랑인데 말일세.

파리에선 두 걸음만 내딛어도 지옥 같은 함정을 만나게 된다네."

-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