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자꾸만 아프고 마음은 자꾸만 허공을 떠돌고,
부질없음으로 고개 젓기에도 지칠 때쯤 이 책을 만났다.
별다른 기대 없이 집어든 책에서 따스한 향이 났다.
사진도 좋지만 사진에 덧붙여진 글이 딱딱하게 굳은 마음을 움직일 용기를 주었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조금만 더 참아보자...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신산한 세상살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나이가 들수록 그 기준이 모호해진다.
그렇다고 넋놓고 있을 수만도 없다.
두 걸음 뒤처졌다면 세 걸음 앞지를 욕심은 버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쫓아가는 수밖에.
살아 있는 동안은, 자신의 고통 때문에 소중한 이들의 고통을 모른 척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새가슴으로 중얼거려 본다.
스스로의 성에 갇힌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화장>
교양을 배우는 것은 자칫 화장이 되기 쉽다. 그러나 화장으로는 본 얼굴이 변하지 않는다.
진정한 교양은 화장을 지우는 것이다.
얼굴은 창백하고 버짐이 피어 있는데, 그 위에 번듯한 교양으로 분칠을 해봐야 원판은 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화장을 지우고 솔직하게 맨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
어디가 안 좋은지를 정확히 보고 인정해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안색을 호전시킬 수 있다.
옛말에도 병이 나으려면 병 자랑을 하라고 했다. 감추고 있는 한, 치료의 기회는 멀어진다.
문제는 화장 때문에 정확한 증상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좋다는 책은 다 찾아서 읽고, 좋다는 강의는 다 찾아가서 듣고, 명상을 배워보기도 하고, 종교에 귀의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변화가 오기는 힘들다.
당사자가 문제인데, 자기를 괄호 속에 넣어놓고 괜히 요란스럽게 밖으로만 화장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안에서 오는 것이다. 이 점 하나 돌아보기가 정말 어렵다.
<까마득해서>
평생 탁발을 다녔으니, 까마득해서 햇수가 얼마나 되었는지 가늠조차 할 수가 없다.
맑으나 흐리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불지라도, 굶을 수는 없으니 이 육신을 끌고 다닌 게지.
나는 한평생 무엇을 찾아다닌 걸까? 내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나?
숨 한번 내쉬지 못하면 그대로 쓰러져버릴 이 육신을 하마 버리지 못하고 여기까지 온 것은 과연 무엇을 위해서였나?
이내 모습을 보고, 사람들도 저마다 자신을 돌아보면 좋겠어.
여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이리저리 대보아도 결국 오십 보 백 보니까.
사람들에게 너무 상투적으로 들릴지 몰라. 하지만 그게 사실인걸.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인생이란 결국 한바탕 꿈인 것을. 생사에 갇혀 있기에.
생사를 벗어날 길이 있는가? 그건 나도 몰라. 안다 해도 가르쳐줄 수 없어. 직접 찾아봐야지.
사람들은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살고나 있는지 몰라.
<탑돌이>
할머니들이 지팡이를 짚고 탑을 돌고 있다. 아마 평생 반복해왔을 순례.
인생길에서 부닥치게 되는 마음의 심란함을 다스리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앎의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믿음의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현대인은 십중팔구 앎의 길을 선택한다. 머리로 헤아려 답을 구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 것과 같다.
심란함은 마음이 분열된 결과 생긴 것이다. 앎의 기능은 주관과 객관을 나누게 되어 있다.
그러나 분열로 분열을 치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믿음의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마음은 떠다니는 밀가루 같은 것. 믿음이라는 물로 반죽해서 하나로 뭉쳐야 한다. 마음은 뭉치면 안정된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머리 좋은 사람도 자기 마음 하나는 어쩌지 못한다.
할머니들은 탑을 돌면서 마음의 안정을 구한다.
이것이 지혜로운 처신이다. 믿음도 길러야 생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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