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길] 我

확인

 

 

목련이 필 것 같았다, 가슴속에도

솜처럼 몽실몽실한 하얀 목련이 피어날 것 같았다, 꽃가루

흩날리는 봄날 귀퉁이, 쪼그리고

앉아 목련을 기다렸다, 희망이
해어진 소매 끝처럼 너덜거릴 때까지, 눈이
시리도록 목련만 올려다보며,
오늘만은 오늘만은
목련나무 그늘을 떠나지 않았다. 
 

 

 

구름처럼 흘러가던 사람 몇 힐끔거리고, 아무도
거기 왜 있냐고 묻지 않고, 간혹
낯익은 얼굴 하나 가지 끝에 매달리고, 그들이

무서워 날선 마음으로 눈을 질끈 감고, 눈을
감으면 먹먹해진 귓속으로 베토벤이 울려 퍼지고, 베토벤이
짜자잔 짠 하고 목련나무 키를 훌쩍 뛰어넘으면, 어제 그제
다 떨어진 희망으로 목련을 그린다.  
 

 

서쪽에서부터 불어온 바람이, 서툰

그리움으로 희망을 밀어내면, 휘청이는

그림자 뒤로하고 열심히 동쪽으로 뛰어가고, 헉헉

뒤돌아보면 어느새 야금야금 파먹힌 봄날, 피지 않는

묵묵부답의 목련 곁에서 손을 흔드니, 새까맣게

속이 탄 세월이 희망으로 잠시 피어올랐다가, 인생 

상(無常)의 목련 잎으로 뚝뚝 떨어져 발끝에 채인다.

 

 

 

그렇게
내일또내일
목련이 피었다.

 

'[마음길] 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애별(哀別)  (4) 2013.04.06
return  (0) 2013.04.03
하수구에 빠졌다  (8) 2013.03.23
후회  (8) 2013.03.20
손가락 사이사이  (0) 2013.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