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린에게 그리움이 말이야, 회색빛 하늘에서 빗물처럼 떨어져 내릴 때 너희를 처음 만났어. 쇠붙이로 된 너희 몸을 타고 주르륵 흘러들어간 그리움이 말이야, 뻥 뚫린 마음의 구멍 사이로 차곡차곡 쌓였지. 특정한 무언가가 그리웠던 건 아니야. 그리움이란 말이야, 그냥 허전한 거야. 허전함으로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허전함으로 누군가와 만날 약속을 하고 허전함으로 잔뜩 인생에 취하는 거지. 그렇다고 말이야, 너희는 잘 모르겠지만 그게 꼭 슬프거나 불행한 건 아니야. 누구나 가슴에 소중한 것 하나씩은 품고 있는데 자꾸만 잊어버려서 그걸 다시 찾으려고 하는 거거든. 그래서 때가 되면 쌓여 있던 허전함이 비가 되어 내려 잊고 있던 소중한 무언가를 생각나게 해주는 거야. 그게 그리움이야. 우산을 받쳐주고 싶었어. 고층 건물로.. 더보기
낯선 거리에서 토요일 한낮이었다. 마른장마의 따가운 햇볕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드는. 참으로 오랜만에 낯선 곳을 버스를 타고 찾아가는 길이었다. 동네 정거장마다 다 서는 버스에 앉아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라는 책을 펼쳐들었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요즘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푹 빠져버린 임태경의 'Adagio'를 듣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버스 차창을 타고 도둑고양이처럼 넘어오는 햇살 한 자락과 만나 감미롭게 울려 퍼졌다. 느닷없이 찾아든 평온함이었다. ‘흠, 이것도 흥미롭네.’ 몸도 마음도 편한 상태가 아니었는데, 토요일 한낮에 낯선 곳으로 낯선 이들을 만나러 간다는 사실이 그다지 싫지 않았다. 낯섦에 경기를 일으키는 나로서는 이상한 일이었다. 웬일인지 정차하는 정류장마다 평온한 풍경이었다. 문득 차창 밖으.. 더보기
[소설] 암스테르담 - 이언 매큐언 1999年7月2日 초판1쇄본 / 현대문학 / 이언 매큐언 "당신에겐 친구가 있습니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맴도는 질문이었습니다. 인디언 말로 친구란 '내 슬픔을 자기 등에 메고 가는 사람'이라지요. 당신에겐 당신의 슬픔과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걸어가 줄 친구가 있습니까? 그런 친구는 몇몇 있으시다고요? 그렇다면 당신의 기쁨과 성공을 함께 나눌 친구는요? 어찌 된 일인지 인간은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을 나누는 데 인색합니다. 남의 불행을 슬퍼하긴 쉬워도 남의 성공을 내 일처럼 기뻐하긴 어려우니까요. 인간의 가장 인간적인 본성, 질투 때문입니다. 이 책은 그런 친구들의 얘기이면서 인간의 본성에 관한 얘기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숨기려고 애를 써봐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게 되는 인간의 이기적이고 치졸.. 더보기